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182] 지미무미(至味無味)

bindol 2020. 8. 2. 05:34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유명한 냉면집을 안내하겠다 해서 갔더니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맛을 보곤 실망했다. 좋게 말해 담백하고 그저 말해 밍밍했다. 네 맛도 내 맛도 없었다.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꼽는다는 냉면집 맛이 학교 앞 분식집만도 못했다. 나처럼 실망한 사람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집 벽에 순수한 재료로만 육수를 내서 처음 맛보면 이상해도 이것이 냉면 육수의 참맛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여러 해 전 일인데도 가끔 생각난다. 감미료로 맛을 낸 육수 국물에 길들여진 입맛들이 얼마나 투덜댔으면 주인이 그런 글을 써 붙일 생각을 했을까? 그래도 사람들이 여전히 줄을 서서 찾는 걸 보면, 맛을 아는 사람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세상 사는 맛은 진한 술과 식초 같지만, 지극한 맛은 맛이 없다. 맛없는 것을 음미하는 사람이 능히 일체의 맛에서 담백해질 수 있다. 담백해야 덕을 기르고, 담백해야 몸을 기른다. 담백해야 벗을 기르고, 담백해야 백성을 기른다(世味醲嚴, 至味無味. 味無味者, 能淡一切味. 淡足養德, 淡足養身, 淡足養交, 淡足養民)." '축자소언(祝子小言)'에 나온다.

자극적인 맛에 한번 길들면 덤덤한 맛은 맛 같지도 않다. 고대의 제사 때 올리는 고깃국인 대갱(大羹)은 조미하지 않았다. 현주(玄酒)는 술이 아니라 맹물의 다른 이름이다. 아무것도 조미하지 않았지만 모든 맛이 그 안에 다 들어있다. 당장에 달콤한 맛은 결국은 몸을 해치는 독이 된다.

"진한 술, 살진 고기, 맵고 단 것은 참맛이 아니다. 참맛은 단지 담백할 뿐이다. 신통하고 기특하며 탁월하고 기이한 것은 지극한 사람이 아니다. 지극한 사람은 다만 평범할 따름이다(醲肥辛甘非眞味, 眞味只是淡. 神奇卓異非至人, 至人只是常)." '채근담'의 한 구절이다. 참맛은 절대 자극적이지 않다. 깨달은 사람은 깨달은 태를 내지 않는다.

사람들은 신기한 것만 대단한 줄 알고, 자극적인 맛만 맛있다고 한다. 담백은 맛없다고 외면하고, 평범은 한목에 무능으로 몰아 무시한다. 공자께서 탄식하셨다. "먹고 마시지 않는 사람이 없건만, 능히 맛을 아는 자는 드물다(人莫不飮食也, 鮮能知味也)."선거철마다 각종 공약이 난무하고 장밋빛 청사진이 황홀하다. 그럴듯해 보이는 것일수록 가짜다. 달콤함에 현혹되면 안 된다. 평범과 담백의 안목이 필요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30/201210300294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