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348] 석복겸공 (惜福謙恭)

bindol 2020. 8. 3. 07:19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만나는 사람마다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말을 주고받는 새해다. 한때 '부자 되세요'가 새해 덕담일 때도 있었다. 복은 많이 받아 좋고 돈은 많이 벌어야 신나지만 너무 욕심 사납다 싶어 연하장에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라고 쓴 것이 몇 해쯤 된다.

엮은이를 알 수 없는 '속복수전서(續福壽全書)'의 첫 장은 제목이 석복(惜福)이다. 복을 다 누리려 들지 말고 아끼라는 뜻이다. 여러 예를 들었는데 광릉부원군 이극배(李克培) 이야기가 첫머리에 나온다. 그는 자제들을 경계하여 이렇게 말했다. "사물은 성대하면 반드시 쇠하게 되어 있다. 너희는 자만해서는 안 된다." 그러고는 두 손자 이름을 수겸(守謙)과 수공(守恭)으로 지어주었다. 석복의 처방으로 겸손과 공손함을 제시했다. 다시 말했다. "처세 방법은 이 두 글자를 넘는 법이 없다." 자만을 멀리해 겸공(謙恭)으로 석복하라고 이른 것이다.

홍언필(洪彦弼)은 가법이 몹시 엄했다. 아들 홍섬(洪暹)은 벼슬이 판서에 올랐어도 겉옷까지 제대로 차려입지 않고는 감히 들어가 문안을 여쭙지 못했다. 홍언필이 몸이 안 좋을 때는 아들에게 손님을 접대케 했는데, 그가 검소한 복장에 말과 태도가 겸손했으므로 처음 보는 사람은 그가 한 나라의 판서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판서는 평소에 초헌(�軒)을 타지 않았는데 하루는 어쩌다 타고 나갔다가 그 길로 부친을 찾아뵈었다. 그때 마침 홍언필이 밖에서 들어오다가 아들이 타고 온 초헌이 있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는 즉시 사람을 불러 그 초헌을 대문 위에 매달아 두게 했다. 오랜 뒤에 그 초헌을 내려서 보내주며 말했다. "아비가 가마를 타는데 자식이 초헌을 타니, 그러고도 네가 편안하더냐?"

소동 파가 말했다. "입과 배의 욕망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매양 절약하고 검소함을 더함이 또한 복을 아끼고 수명을 늘리는 방법이다(口腹之欲, 何窮之有? 每加節儉, 亦是惜福延壽之道)." 이제는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를 '새해 복 많이 아끼세요'로 바꿔 말하고 싶다. 부족함보다 넘치는 것이 더 문제다. 채우지 말고 비우고, 움켜쥐는 대신 내려놓는 것이 어떤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1/05/201601050387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