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3년 김주(金澍, 1512~1563)가 북경에 갔다. 밤중에 '주역' 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깊은 밤 불 밝힌 방 하나가 있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를 불러 연유를 물었다. 그는 절서(浙西)에서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북경에 온 수험생이었다. 시험에 낙방해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연관(燕館)에서 날품을 팔며 다음 과거를 준비한다고 했다.
김주는 그에게 비단을 선물하고 즉석에서 조선 부채에 글을 써서 주었다. "대나무로 깎은 것은 절개를 취함이요, 종이를 바른 것은 깨끗함을 취해설세. 머리 쪽을 묶음은 일이관지(一以貫之) 그 뜻이고, 꼬리 쪽을 펼치는 건 만수(萬殊) 다름 보임이라. 바람을 일렁이면 더위를 씻어주고, 먼지가 자욱할 땐 더러움을 물리치지. 자루를 잡았으니[操柄] 베품이 내게 있어, 필요할 때 쓴다면 미뤄 달함[推達] 문제없다. 오직 저 만물은 태극을 갖췄으니, 한 이치 궁구하여 얻음이 있을진저. 아! 날품 팔며 오히려 '주역' 공부 너끈하니, 어이 이 부채로 법도 삼지 않으리.(削以竹, 取其節也. 塗以紙, 取其潔也. 束厥頭, 一以貫也, 廣厥尾, 殊所萬也. 風飄飄, 熱可濯也, 塵漠漠, 汚可却也. 操者柄, 施在我也, 用必時, 推達可也. 惟萬物, 具太極也, 究一理, 爰有得也. 噫! 賣兔猶足以作易, 盍於玆扇以爲則!)"
부채는 살이 하나로 꿰어져 손잡이가 되고, 좌르륵 펴면 가지런히 펼쳐진다. 여기서 그는 '주역'의 이일만수(理一萬殊)를 읽었다. 하나의 이치가 만물 속에 저마다의 모습으로 간직되어 있다. 그러니 조병추달(操柄推達), 즉 자루[柄]를 꽉 잡고서 확장하여 어디든 이를 수가 있으리라. 그대가 지금은 품을 팔며 고단하나 이렇듯 공부에 힘쓰니 앞날이 크게 열리리라는 덕담이었다.
10년 뒤인 1563년에 김주가 변무사(辨誣使)로 다시 북 경에 갔다. 하루는 한 재상이 사신의 숙소로 김주를 찾아왔다. 살펴보니 예전 '주역'을 외우던 그 품팔이꾼이었다. 김주의 격려에 고무되어 부채를 쥐고 공부해 과거에 급제해서 예부시랑이 되어 있었다. 그의 주선으로 종계변무(宗系辨誣)의 해묵은 숙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조병추달! 자루를 꽉 잡고 필요할 때 미루어 쓴다. 눈앞의 삶이 고단해도 뜻을 꺾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