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첨(李爾瞻)이 함경감사로 부임하던 날, 수레를 타고 만세교(萬歲橋)를 건넜다. 그는 서안(書案)에 놓인 책만 보며 바깥 풍경에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감영의 기생들이 그의 잘생긴 얼굴과 단정한 거동을 보고는 신선 같다며 난리가 났다. 이이첨은 인물이 관옥(冠玉)처럼 훤했다. 대화할 때 시선이 상대의 얼굴 위로 올라오는 법이 없었고, 말은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것처럼 웅얼거렸다(視不上於面, 言若不出口). 그를 본 이항복이 말했다. "한 세상을 그르치고, 나라를 망치고 집안에 재앙을 가져올 자가 반드시 이 사람일 것이다." 뒤에 그대로 되었다. '송천필담(松泉筆談)'에 나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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