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온(鄭蘊·1569~1641)이 1614년 2월, 영창대군 복위 상소를 올렸다가 의금부에 투옥되었다. 감옥에 들며 지은 시다. "삼월이라 삼짇날, 젓대 소리 들려온다. 어이해 포승 묶여, 복당문(福堂門)에 혼자 드나(政是三三節, 笙歌處處聞. 如何負縲絏, 獨入福堂門)." 삼월 삼짇날이라 밖이 떠들썩하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즐거운 날 포승줄에 묶인 채 감옥에 들어가는가?
감옥을 복당(福堂)이라 했다. 이덕무는 지금 사람들이 감옥을 복당(福堂)이라 하는 까닭을, 위서(魏書) '형벌지(刑罰志)'에서 현조(顯祖)가 "사람이 갇혀 고생하면 착하게 살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감방과 복당이 함께 사는 셈이다. 짐은 회개시켜 가벼운 용서를 더하고자 한다(夫人幽苦則思善. 故囹圄與福堂同居. 朕欲改悔, 而加以輕恕耳)"고 한 말에서 찾았다. '앙엽기(盎葉記)'에 나온다. 복당이란 표현은 '오월춘추(吳越春秋)'에서 "화(禍)는 덕의 뿌리가 되고, 근심은 복이 드는 집이 된다(禍爲德根, 憂爲福堂)"고 한 것이 처음이다.
내게 닥친 재앙을 통해 나는 더 단단해진다. 근심은 오히려 복이 들어오는 출입구가 된다. 재앙을 돌려 덕의 뿌리로 삼고, 근심을 바꿔 복이 깃드는 집으로 만드는 힘은 공부에서 나온다. 시련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마는 것은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윤식(金允植·1835~1922)은 감옥에 갇힌 아들의 안위를 근심하며 쓴 긴 시에서 이렇게 적었다. "군자는 궁할 때 굳게 지킴을 귀히 여기니, 환난에도 평소대로 행동한단다. 고요 길러 신기(神氣)를 온전히 하면, 봄바람이 폐부에서 일어나리라. 감방을 복당이라 얘기하는데, 이 말이 참으로 틀리지 않네(君子貴固窮, 患難行其素. 養靜神氣全, 春風生肺腑. 囹圄稱福堂, 此語定不誤)." '논어'에서 "군자는 곤 궁 속에서도 굳세지만, 소인은 궁하면 멋대로 군다(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고 했고, '중용장구(中庸章句)' 14장에서는 "환난에 처해서는 환난에 맞게 행한다(素患難, 行乎患難)"고 한 말에서 끌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