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425] 무소유위 (無所猷爲)

bindol 2020. 8. 4. 05:36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윤기(尹愭·1741-1826)가 '소일설(消日說)'에서 말했다. "사람들은 긴 날을 보낼 길이 없어 낮잠이라도 자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성인께서 '배불리 먹고 날을 마치도록 아무 하는 일이 없다(飽食終日, 無所猷爲)'고 한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저마다 하는 일이 있어 종일 부지런히 애를 써도 부족할까 걱정인데, 어찌 도리어 세월을 못 보내 근심한단 말인가?"

'소학(小學)' '가언(嘉言)'에서는 장횡거(張橫渠)의 말을 인용해, "배우는 자가 예의를 버린다면 배불리 먹고 날을 보내면서 아무 하는 일이 없어 백성과 똑같게 된다. 하는 일이라곤 입고 먹는 사이에 잔치하며 노니는 즐거움을 넘어서지 않는다(學者捨禮義, 則飽食終日, 無所猷爲, 與下民一致, 所事不踰衣食之間, 燕遊之樂耳.)"라고 하였다. 시간 여유도 있고, 돈도 있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다. 이렇게 되면 맛있는 음식 사 먹고, 좋은 옷으로 치장하면서, 더 신나게 놀며 시간 때울 궁리밖에 할 것이 없다.

윤기의 말이 이어진다. "내가 세상 사람들을 보니, 그저 날마다 허랑방탕하게 한 해가 다 가도록 멋대로 놀면서, 먹는 것은 입에 달고 맛난 것만 찾고, 의복은 화려하고 새로운 것만 구한다. 친지를 찾아가거나 고만고만한 부류와 얼려 지낸다. 유행하는 말을 모르면 고루하다 하고, 바둑·장기 못 두는 것을 수치로 안다. 집에서는 도대체 마음 둘 데가 없는 듯이 굴고, 남과 만나면 시답잖은 우스갯소리나 일삼는다. 조정 소식은 제가 먼저 들은 것을 뽐내며 널리 퍼뜨리고, 남의 집안 궂은일은 굳이 보태서 떠들어댄다. 화류계와 노름판에는 끼지 않는 데가 없고, 씨름판이나 꼭두놀음은 언제나 앞자리를 다툰다. 스스로 이것을 극락세계라 하면 서 토방에서 형설(螢雪)의 노력을 하는 사람을 도리어 비웃는다. 세월은 물같이 흘러가니 어쩌겠는가? 어느새 늙어 집안 살림은 거덜이 나고 오두막에서 비쩍 말라 몰락하고 나면, 어찌 소일하는 근심이 없기를 면하겠는가?"

소일은 다 늙어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눈물을 흘리면서 하는 것이다.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 못 해 무위도식하는 것은 재앙이요 형벌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12/201707120320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