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430] 철망산호 (鐵網珊瑚)

bindol 2020. 8. 4. 05:42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깊은 바닷속의 산호 캐기는 당나라 때부터다. 어민들은 산호초가 있는 바다로 나가 쇠그물을 드리운 뒤 배의 끄는 힘을 이용해 산호를 캤다. 철망산호, 즉 쇠그물로 캐낸 산호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진귀한 보물 대접을 받았다. 명나라 때 주존리(朱存理)는 고대 서화에 대한 기록을 망라해 정리한 자신의 저술에 '철망산호(鐵網珊瑚)'란 이름을 붙였다.

장유(張維·1587~1638)는 시관(試官)이 되어 영남으로 떠나는 학사 이상보(李尙輔)에게 준 시 중에서, "푸른 바다 깊은 곳의 해약(海若)이야 근심해도, 산호는 쇠그물로 건져주길 기다리리. 천리마가 소금 수레 끄는 일 없게 하고, 칼빛이 북두성을 다시 범함 없게 하소(滄溟深處海若愁, 珊瑚正待鐵網搜. 鹽車莫遣困驊騮, 劍氣不復干斗牛)"라고 노래했다. 쇠그물이 바다 밑을 훑으면 바다의 신 해약이야 근심겹겠지만, 산호는 그 쇠그물에 걸려 자신의 진가를 알아줄 세상으로 나가게 되길 기다릴 것이다. 천리마가 소금 수레 끄는 일이 없게 하고, 땅속에 묻힌 보검이 공연히 하늘에 제 검기(劍氣)를 비추는 일이 없도록 유능한 인재를 잘 선발해 달라는 바람을 담았다.

 

도서 '청강 이제신 평저'

 

신흠(申欽·1566~1628)은 청강(淸江) 이제신(李濟臣·1536~1583)의 문집 발문에 이렇게 썼다. "아, 아양 떨고 교태를 부리며 대문에 기대 스스로를 파는 자는 수없이 많다. 하지만 공은 충직하고 질박함으로 당시에 배척당했다. 형상에 기대고 그림자로 빌붙어 깜냥도 안 되면서 자리를 차지해 이익을 노리는 자가 한도 없다. 하지만 공은 충실함 때문에 글의 그물에 걸려들었다. 공이 당한 일로 보면 끝내 캄캄하게 인몰되어 뒤에 다시는 보지 못할 듯하였는데, 몸이 죽자 말이 서고, 말이 서자 이름이 전해졌다. 비유하자면 산호의 보배로운 가지가 철망에 흘러들어, 마침내 희대의 보물이 된 것과 한가지다. 어찌 세상의 얕은 의론을 가지고 백세의 사업과 맞바꿀 수 있겠는가?"

깊은 바닷속 산호가 철망에 건져 올려져 세상이 아끼는 보배가 된다. 실력을 다져 아름다운 바탕을 간직해 어느 순간 들어 올려지자 그 자태가 참으로 눈부시다. 백대의 이름 앞에서 한때의 시련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16/201708160316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