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431] 갱이사슬 (鏗爾舍瑟)

bindol 2020. 8. 4. 05:43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공자가 어느 날 자로와 증석, 염유와 공서화 등 네 제자와 함께 앉았다. "우리 오늘은 허물없이 터놓고 얘기해 보자. 누가 너희를 알아주어 등용해준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 제자들은 신이 나서 저마다의 포부를 밝혔다. 다들 나랏일에 참여하여 큰일을 해내고 싶은 바람을 드러냈다. 공자는 그 말을 듣고 씩 웃었다. "너는?" 스승의 눈길이 마지막으로 증석을 향했다.

증석은 슬(瑟) 연주를 늦춰 젱그렁 소리를 내면서 슬을 내려놓고 일어났다.(鼓瑟希, 鏗爾, 舍瑟而作.) "선생님!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늦봄에 봄옷이 이루어지면 어른 대여섯과 아이 예닐곱을 데리고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 쐬고 시를 읊으며 돌아오렵니다." 공자가 감탄하며 말했다. "나도 너와 같이하마." 논어 '선진'에 나온다.

처음부터 증석은 슬을 연주하고 있었다. 제가 말해야 할 차례가 되자 그는 슬 연주를 늦추더니 젱그렁 맑은 울림을 내고는 무릎에서 바닥으로 슬을 내려놓았다. 바닥에 놓인 슬은 계속해서 길고 잔잔한 소리를 낸다. 이어서 나온 그의 말처럼.

'임원경제지' 중 '이운지(怡雲志)'에는 금실(琴室)에 대한 설명이 있다. 사대부의 거처에는 볏짚을 엮어 세운 정자나 외진 구석방에 금을 연주하는 공간을 따로 마련했다. 바닥에 커다란 항아리를 하나 묻어둔다. 주둥이 부분에 큰 구리종 하나를 매단다. 그 위에 나무판자를 깔아 덮는다. 그 위에서 금을 연주하면 항아리가 공명통 역할을 해서 더욱 맑고 은은한 느낌을 낸다. 그 사이로 들릴 듯 말 듯 끼어드는 종의 진동. 솔숲이나 대숲에 작은 이 층 누각을 세워 금실을 지을 때도 바닥을 나무판으로 하고 그 아래는 텅 비워 울림판 역할을 하게 했다.

다산의 초당 12경시 중 하나. "소나무 단 (壇) 바위 평상, 내가 금을 타는 곳. 금을 걸고 손님 간 뒤, 바람 오면 혼자 소리.(松壇白石牀, 是我彈琴處. 山客掛琴歸, 風來時自語.)" 이것은 바람에 저 혼자 우는 거문고 소리다. 도연명의 거문고는 애초에 현(絃)조차 없었다. 그는 북창 아래서 벽에 걸린, 줄 없는 거문고의 깊은 가락을 들었다. 인생에도 젱그렁 길게 끌리는 여운이 필요할 때가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23/201708230365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