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444] 괘일루만 (掛一漏萬)

bindol 2020. 8. 4. 06:03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이 임금께 올린 '물길을 따라 둔보(屯堡)를 두는 문제에 대해 올리는 글(措置沿江屯堡箚)'의 말미에 이렇게 썼다. "신은 오랜 병으로 정신이 어두워 말에 두서가 없습니다. 하지만 얼마간 나라 근심하는 정성만큼은 자리에 누워 죽어가는 중에도 또렷합니다. 간신히 붓을 들었으나 괘일루만(掛一漏萬)인지라 모두 채택할 만한 것이 못 됩니다. 하지만 삼가 성지(聖旨)에 대해 느낌이 있는지라 황공하옵게 아뢰나이다(臣病久神昏, 言無頭緖. 然其一段憂國之忱, 耿耿於伏枕垂死之中. 艱難操筆, 掛一漏萬, 皆不足採. 然伏有感於聖旨之下, 惶恐陳達)."

퇴계(退溪) 이황(李滉)도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에서 "신이 비록 평소 꾀가 어두우나 붉은 정성을 다하여 한 가지라도 얻으려는 어리석음을 본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또 아뢰는 즈음에 정신이 산란하고 말이 어눌하여 괘일루만일까 염려됩니다(臣雖素昧籌略, 不可不罄竭丹忱, 思效一得之愚. 而又恐口陳之際, 神茫辭訥, 掛一漏萬)."

졸수재(拙修齋) 조성기(趙聖期)는 '임덕함에게 보낸 답장(答林德涵書)'에서 "나머지는 인편이 몹시 바빠 서둘러 여기까지만 쓰니 괘일루만올시다. 모두 말없이 살펴두시지요.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아도 만나지 않고는 다 말하기 어려운지라 종이를 앞에 두고 서글퍼할 뿐이외다(萬萬便人忙甚, 力疾暫此, 掛一漏萬. 都在嘿會. 有無限所欲言者, 非面難悉, 臨紙悵然而已)"라고 썼다.

괘일루만은 옛글에서 자주 쓰던 표현이다.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적느라 나머지는 다 빠뜨리고 말았다는 뜻이니, 요즘 말로 적자면 '용건만 간단히'쯤에 해당한다. 표현에 맛이 있다. 예를 다 갖추지 못한다는 겸사에 겸해 논지의 핵심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효과가 있다.

반대로 괘만루일(掛萬漏一)이란 표현 도 쓴다. 1만가지를 고려하는 중에 정작 중요한 한 가지를 빠뜨렸다는 뜻이다. 백밀일소(百密一疎), 천려일실(千慮一失)과 의미가 같다. 빈틈없는 것이 좋긴 하지만, 폼만 잡고 핵심을 놓친 괘만루일과, 중심을 붙들어 소소한 것은 개의치 않는 괘일루만 중 어느 한쪽을 택해야 한다면 후자가 더 낫지 싶다. 정작 문제는 핵심 역량의 우선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29/201711290353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