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영감 둘이 심심풀이로 내기 장기를 두었다. 한 수를 물리자고 승강이를 하던 통에 뿔이 나 밀었는데 상대가 눈을 허옇게 뒤집더니 사지를 쭉 뻗고 말았다. 온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졸지에 살인자가 된 영감은 기가 막혀 넋을 놓았다. 집에 있던 두 아들도 얼이 빠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밖에서 소식을 듣고 셋째가 달려왔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으냐?" 셋째는 제 아버지를 나오래서 기둥에다 동여 묶더니 휑하니 나갔다. 잠시 후 죽은 이의 큰아들을 끌고 와 묶인 제 아버지 앞에 세웠다. "자, 죽여라." "?!" "네 아버지를 죽인 원수가 아니냐? 어서 죽여라." "그럼 어떻게 되는데?" "어떻게 되긴. 우리 아버지가 네 아버질 죽였으니, 너는 우리 아버질 죽이고, 그러면 네가 우리 아버질 죽였으니까 너 세 발자국 떼기 전에 내가 너를 죽이고. 너는 장가들어 아들이 있지? 그놈이 자라면 나를 죽이고, 그러는 거지 뭐." "아저씨 들어가세요.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실 분이어서 그랬지 아저씨가 뭘 어떻게 하셨다고요." 그래서 이 사건은 없던 일로 처리되었다. 이훈종 선생의 '오사리잡놈들'에 나오는 얘기다.
"임금과 아버지의 원수는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가 없다(君父之讐, 不共戴天)"는 말을 두고 풀이하는 자가 복수는 5대까지 다해야 한다고 하자 5대 아니라 백대까지도 원수는 갚아야 한다고 했다. 이익(李瀷)은 '성호사설'의 '백세보구(百世報仇)'조에서 이렇게 풀이했다. '비록 어버이와 자식 사이가 분명해도 그의 죄가 아니라면 군자가 혹 이것을 되갚지 아니하는 것인데, 하물며 백세의 뒤에 문득 그 선조의 선악이 어떠하였는지도 잘 알지 못하면서 졸지에 찾아가 죽이는 이 같은 이치는 없을 듯하다.' 호씨(胡氏)는 앞서의 논의에 대해 '세대가 바뀐 뒤에는 원망을 풀어 화평함이 옳다(易世之後, 釋怨而平可也)'고 주를 달았다.
털고 보니 참 어처구니없는 세상을 살아왔다 싶다. 큰 잘못은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 것이 백번 옳다. 시시콜콜한 지난 잘못까지 일일이 다 꺼내 바로 잡자면 문제가 더 꼬인다. 뒤만 돌아보느라 정작 발등에 떨어진 불을 못 보면 어쩌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