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453] 침정신정 (沈靜神定)

bindol 2020. 8. 4. 06:23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침정(沈靜), 즉 고요함에 잠기는 것은 입 다물고 침묵한다는 말이 아니다. 뜻을 깊이 머금어 자태가 한가롭고 단정한 것이야말로 참된 고요함이다. 비록 온종일 말을 하고, 혹 천군만마(千軍萬馬) 중에서 서로를 공격하며,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번잡한 사무에 응하더라도 침정함에 방해받지 않는 것은, 신정(神定) 곧 정신이 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번이라도 드날려 뜻이 흔들리면, 종일 단정히 앉아 적막하게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기색이 절로 들뜨고 만다. 혹 뜻이 드날려 흔들리지 않는다 해도 멍하니 졸린 듯한 상태라면 모두 침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沈靜非緘黙之謂也. 意淵涵而態閑正, 此謂眞沈靜. 雖終日言語, 或千軍萬馬中相攻擊, 或稠人廣衆中應繁劇, 不害其爲沈靜, 神定故也. 一有飛揚動擾之意, 雖端坐終日, 寂無一語, 而色貌自浮, 或意雖不飛揚動擾, 而昏昏欲睡, 皆不得爲沈靜)."

명나라 여곤(呂坤·1536~1618)이 '신음어(呻吟語)'에서 한 말이다. 침정은 마음에 일렁임이 없이 맑게 가라앉은 상태다. 침정은 신정에서 나온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면 번잡한 사무를 보고, 말을 많이 해도 일체의 일렁임이 없다.

이덕무(李德懋)는 '원한(原閒)'에서 이렇게 썼다.

"넓은 거리 큰길 속에도 한가로움이 있다. 마음이 진실로 한가롭다면 어찌 굳이 강호나 산림을 찾겠는가? 내 집은 시장 곁에 있다. 해가 뜨면 마을 사람이 물건을 파느라 시끄럽다. 해가 지면 마을의 개들이 무리지어 짖는다. 하지만 나는 홀로 책을 읽으며 편안하다. 이따금 문밖을 나서면 달리는 사람은 땀을 흘리고, 말 탄 사람은 내달으며, 수레와 말은 뒤섞여 얽혀 있다. 나만 홀로 천천히 걸음을 내딛는다. 일찍이 소란함으로 인해 나의 한가로움을 잃지 않으니, 내 마음이 한가롭기 때문이다(通衢大道之中, 亦 有閒, 心苟能閒, 何必江湖爲, 山林爲? 余舍傍于市, 日出, 里之人市而閙, 日入, 里之犬羣而吠, 獨余讀書安安也. 時而出門, 走者汗, 騎者馳, 車與馬旁午而錯, 獨余行步徐徐. 曾不以擾失余閒, 以吾心閒也)."

엉뚱한 데 가서 턱없이 찾으니 마음이 자꾸 들떠 허황해진다. 가만히 내려놓고 차분히 가라앉히는 것이 먼저다. 고요함은 산 속에 있지 않고 내 마음 속에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31/201801310333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