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 '공과격(功過格) 신앙'이 유행했다. 공(功)과 과(過)를 조목별로 점수를 매기고, 격(格), 즉 빈칸에 날마다 자신의 공과를 하나하나 적어 나간다. 점수를 계산해 연말에 총점을 매긴다. 그 결과만큼의 화복이 주어지고 수명이 늘거나 준다고 믿었다. '공과격'의 실천으로 복을 받고 장수한 성공 사례들은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 '선음즐문(善陰騭文)' '공과격' 같은 도교 계통의 권선서(勸善書)에 함께 담겨 널리 읽혔다.
1905년, 을사오적의 한 사람인 권중현(權重顯·1854~1934)이 '공과신격(功過新格)'이란 책을 펴냈다. 이듬해에는 보급용으로 '공과신격언해'까지 간행해 무료로 배포했다. 왜 그랬을까? 공(功)의 항목 중 가장 점수가 높은 것이 선서(善書)를 간행해 무료로 배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무려 100점이었다. 나눠준 책 수에 백을 곱하면 어떤 악행을 덮고도 남았다.
나라를 팔아먹고 받은 은사금을 떼어 책을 펴내 제 죄를 상쇄하는 보험을 들었던 셈이다. 남의 굶주림을 구제해주거나 다리를 놓는 것이 고작 1점이고 보면, 100점 받기가 정말이지 쉽지 않다. 반대로 여자의 정조를 유린하는 것은 벌점이 100점이다. 상습범일 경우 어떤 선행으로도 만회가 거의 불가능하다.
송나라 때 조숙평(趙叔平)은 평생 고결한 행실로 세상의 기림을 받았다. 그의 책상에는 그릇 세 개가 놓여 있었다. 하나에는 흰콩을, 다른 하나에는 검은콩을 담았다. 가운데는 빈 그릇을 놓았다. 착한 생각이 일어나면 흰콩 하나를 가운데 그릇에 담고, 삿된 생각이 일면 검은콩 하나를 담았다. 매일 밤 가운데 그릇에 담긴 콩의 숫자를 세어 하루를 점검했다. 처음엔 검은콩이 더 많더니, 점점 흰콩의 숫자가 늘어나 나중에는 흰콩만 남았다. 흰콩과 검은콩으로 자신을 점검한 (以豆自檢) 이야기다. 이현석(李玄錫·1647~1703)이 숙종에게 올린 상소에 이 일을 권한 대목이 나온다.
착한 일, 좋은 생각만 하며 살기에도 벅찬 세상이다. 입으로는 온갖 고상한 소리, 거창한 말만 하면서 속으로는 남 해칠 궁리 아니면 여자 건드릴 속셈뿐이다. 그들도 권중현처럼 뭔가 믿는 구석이 있었겠지만, 결국은 천고(千古)에 더러운 이름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