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546] 견미지저 (見微知著)

bindol 2020. 8. 6. 04:54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윤기(尹愭·1741~1826)가 '정력(定力)'에서 말했다. "겉모습을 꾸며 천하에 뽐내어 굳센 의지가 있다는 명성을 훔치려는 자는 비록 힘써 마음을 눌러 자취를 감추려 해도 자연스레 그렇게 한 것이 아닌지라 끝내 덮어 가릴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천금 값어치의 구슬을 깬다면서 깨진 솥에 놀라 소리 지르고, 벼랑 위의 범을 때려잡을 수 있다지만 벌이나 전갈에 깜짝 놀란다. 능히 천승(千乘)의 나라를 사양한다면서 대그릇 밥과 나물국 앞에 속마음이 그만 드러나고 만다. 마침내 용두사미여서 본색이 다 드러나 남의 비웃음을 사고서야 그만둔다(欲以粧外面而誇天下, 掠取定力之名者, 雖欲力制其心, 不彰其迹, 而苟非自然而然, 終有所不可得而掩者. 故能碎千金之璧, 而不能不失聲於破釜. 能搏裂崖之虎, 而不能不變色於蜂蠆. 能讓千乘之國, 而不能不露眞情於簞食豆羹之間. 畢竟虎頭蛇尾, 手脚盡露, 爲人笑囮而止)."

정력(定力)은 굳센 의지력을 말한다. 비싼 구슬이 박살 나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던 사람이 솥이 떨어져 깨지자 저도 모르게 놀라 소리를 지른다. 사나운 범도 때려잡는 용맹을 지녔다면서 불시에 날아든 벌이나 땅바닥의 전갈에 깜짝 놀란다. 소식(蘇軾)이 '힐서부(黠鼠賦)'에서 한 말이다. 맹자의 말은 이렇다.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은 능히 천승의 나라를 사양한다. 하지만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닐 경우, 대그릇의 밥이나 제기에 담긴 국에도 낯빛이 바로 드러난다(好名之人, 能讓千乘之國. 苟非其人, 簞食豆羹, 見於色)." 천승의 나라를 양보하는 통 큰 사람이 정작 초라한 밥상을 받자 불쾌한 낯빛을 보인다. 그의 사양이 사실은 명예를 구하는 마음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맹자' 진심(盡心) 하(下)에 나온다.

신흠(申欽·1566~1628)은 '구정록(求正錄)'에서 이렇게 썼다. "깨진 솥에 놀 라 소리를 지르고, 국그릇에 낯빛이 변하니, 작은 일을 보면 큰일을 안다(聲失於破釜, 色見於豆羹, 見微知著)." 호방한 체 큰소리를 치지만 정작 사소한 득실 앞에 감춘 속마음이 저도 모르게 드러난다. 소순(蘇洵)이 '변간론(辨奸論)'에서 말했다. "오직 천하에서 고요한 사람만이 사소한 것을 보고도 드러날 일을 알 수가 있다(惟天下之靜者, 乃能見微而知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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