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엔 덥기가 한여름 같은데 밤이 되니 차갑기가 노추(老秋)와 같구나(白晝炎炎若盛夏 半夜凄凄如老秋).” 송(宋)대 진순(陳淳)이 읊은 노래가 절로 생각나는 계절이다. 낮엔 덥다가도 해만 떨어지면 으스스하다. ‘노추’는 노쇠해 한 과정이 거의 끝나가는 가을이라는 뜻에서 음력 9월을 말한다. ‘다했다’는 의미를 가진 궁(窮)을 써 궁추(窮秋), ‘저물어 간다’는 뜻의 모(暮)를 앞에 붙여 모추(暮秋)라 부르기도 한다. 당(唐)나라 시인 두목(杜牧)은 “내리는 비는 그리운 고향을 떠오르게 하고, 강가에 부는 바람은 저무는 가을을 막네(蓬雨延鄕夢 江風阻暮秋)”라 했다.
음력 9월의 저물어 가는 가을은 모상(暮商)이나 계상(季商)으로 일컫기도 한다. 상(商)은 궁상각치우(宮商角徵羽) 오음(五音) 중 하나로 사계절 중 가을에 해당한다. 9월은 서리가 내리니 추상(秋霜)이요, 가을이 깊어지기에 추심(秋深)이라고 하며, 마지막 가을이라는 뜻에서 추말(秋末)로도 불린다. 만물이 모두 시들어 검게 변한다 해서 검을 현(玄)자를 앞에 붙여 현월(玄月)이라고도 말한다. 그런가 하면 국화꽃이 피기에 국월(菊月)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초목이 서리를 맞아 떨어질 때 국화만큼은 서리를 이겨내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에 생겨난 말이다. 국화의 둥근 모양과 밝은 색은 태양을 상징하고, 양(陽)의 숫자 중 가장 큰 수인 9를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음력 9월 9일, 즉 양(陽)이 두 번 겹치는 중양절(重陽節)에 국화주를 마시면 무병장수(無病長壽)한다는 말도 있다.
9월은 가을 계절의 마지막이기에 계추(季秋)나 만추(晩秋)로도 불린다. 마지막은 아무래도 스산한 느낌을 준다. 잔추(殘秋) 또한 같은 의미다. “쓸쓸히 떨어지는 낙엽은 늦가을을 전송하고 적막한 찬 물결은 어둠 속의 흐름을 재촉하누나(蕭蕭落葉送殘秋 寂寞寒波急暝流).” 당대 시인 권덕여(權德與)가 노래한 시구의 한 구절이다.
이쯤 되면 겨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옛날에는 이 무렵 엄동설한(嚴冬雪寒)의 먹거리는 물론 추위를 막아줄 옷가지를 준비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9월은 ‘수의(授衣)’라 불리기도 한다. 이틀 후인 27일이 음력 9월 초하루다. 경제가 갈수록 암울해지는 요즘, 추운 겨울을 쓸쓸히 지내지 않기 위해 무언가를 준비해야 할 때다.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scyou@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漢字, 세상을 말하다] 秋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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