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이 한창일 때 장택상이 조봉암, 신익희와 함께 이승만 대통령을 찾아가 전쟁 발발 초기에 서울을 사수한다고 해놓고 부산으로 달아난 일에 대해 사과를 요구했다. 이때 이 대통령은 단호하게 거부하며 “내가 당 덕종이냐?”라고 말했다. 그가 이 말을 한 것은 절도사들의 반란이 연이어 일어나 수도인 장안(長安)을 버리고 봉천(奉天)으로 파천해야 했던 당 덕종이 겨우 전란을 수습한 뒤에 죄기조(罪己詔), 즉 전란의 책임이 자기 자신에게 있음을 고하는 조서를 발표한 일을 염두에 둔 것이다. 덕종은 우리 역사의 광해군과 비슷하게 왕자로 있을 때 이미 전공(戰功)을 세웠고 그로 인해 태자가 돼 제위에 올랐다. 재위 초기에는 훌륭한 신하인 양염(楊炎)을 재상으로 삼아 국가 재정을 튼튼히 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번진(藩鎭)을 억압하는 정책을 추진하려다가 역으로 절도사들이 군사를 일으키자 이를 토벌하기 위해 재정을 고갈시켰다. 더 큰 문제는 이때부터 노기(盧杞), 조찬(趙贊), 배연령(裵延齡) 등 간신들을 연이어 중용했고 육지(陸贄)와 같은 충직한 신하들을 내쳤다. 그래서 ‘당 덕종’은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 속에서도 간신들에게 휘둘리다가 나라를 망친 황제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년 전에 이미 선조는 여러 차례에 걸쳐 자신이 한나라 원제(元帝) 꼴이 됐다고 자탄(自嘆)했다. 1583년 10월 22일 선조는 이이(李珥)를 이조판서로 임명하고 면담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마치 한나라 원제가 임금 노릇 할 때와 같아서 소인배를 물리쳐 멀리 내쫓지 못해 나라가 거의 망해가고 있다.” 원제는 유약한 임금의 상징임과 동시에 환관이자 전형적인 간신배인 홍공(弘恭), 석현(石顯) 등에게 휘둘리며 소망지(蕭望之)를 비롯한 강직한 신하들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혼군(昏君)이다. 여당 일각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을 가리켜 태종이니 정조니 하는 말들이 나온다. 그러나 역사 속 인물들 중에서는 한 원제, 당 덕종, 조선 선조, 인조 등이 먼저 떠오른다는 점만 지적해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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