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으로 뜻을 펴기 힘들어 여러 곳을 주유(周遊)하던 시절의 공자가 남녘의 초(楚)나라를 지날 때였다. 낯선 땅에서 길을 잃은 모양이다. 제자 자로(子路)로 하여금 밭을 일구던 은자(隱者) 둘에게 길을 묻게 했다. 그러나 한 은자는 공자를 가리키며 “저 사람이 스스로 잘 알 텐데 뭘 다시 묻느냐”며 제대로 대꾸하지 않는다. 돌아와 사정을 알리는 제자의 말을 들은 뒤 공자는 탄식 속에 다시 길을 떠난다. 그가 물었던 것은 물길 건너는 나루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 일화는 ‘나루를 묻다’라는 뜻의 문진(問津)이라는 유명 전고(典故)로 전해진다. 여기서 ‘나루’는 사실 ‘길’이다. 아울러 지향(志向)이자 방향(方向), 더 나아가 마땅히 걸어야 할 ‘도(道)’까지도 지칭한다. 개인주의적 취향으로 유명했던 사상가 양주(楊朱)도 그런 적이 있다. 잃어버린 양(羊)을 찾아 나섰던 이웃들이 빈손으로 돌아오자 그 이유를 묻는다. 이웃들은 “갈림길이 많아 놓쳤다”고 대답한다. 굳은 얼굴로 양주는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고 한다.
‘갈림길에서 양을 잃다’라는 뜻의 기로망양(岐路亡羊)이라는 성어가 유래한 장면이다. 우리는 보통 ‘양 잃고 외양간 고치다’는 뜻의 성어 망양보뢰(亡羊補牢)를 먼저 떠올리지만, 길에 관한 양주의 깊은 사색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에는 그렇듯 ‘길’에 관한 모색이 깊다. 사는 길은 활로(活路), 그 반대는 사로(死路)다. 길을 묻는 일은 문로(問路), 길을 가리키면 지로(指路)다. 나아가는 진로(進路)도 살피지만, 물러서는 퇴로(退路)도 중시한다. 내수(內需)에 의존하자는 ‘내순환(內循環)’에 “내 힘으로 살아가자”는 자력갱생(自力更生)의 구호가 나오는 요즘 중국이다. 이제껏 견고했던 개혁·개방이 꺾이는 분위기다. 방향을 잃을 수 있는 미로(迷路)일지 모른다. 우리도 깊이 생각해야 할 대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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