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別曲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13] 가을바람의 소리

bindol 2020. 11. 6. 05:19

“… 쟁그랑쟁그랑, 쇠붙이가 모두 울리는 듯. 또한 적진을 향해 다가서는 병사들처럼 재갈을 입에 물고 빠르게 달리는데, 호령은 들리지 않고 그저 사람과 말이 달리는 소리뿐(鏦鏦錚錚, 金鐵皆鳴. 又如赴敵之兵,銜枚疾走,不聞號令,但聞人馬之行聲).”

가을밤에 책을 읽다가 문득 뜰로 나선 북송(北宋) 문인 구양수(歐陽修)의 귀에 들어온 소리 묘사다. ‘추성부(秋聲賦)’라는 제목의 이 글 속에서 그에게 가을은 우선 날카로운 쇠붙이 소리로 다가온다. 아울러 조용하며 빠르게 행군하는 군사들로써 드러내는 숙살(肅殺)의 분위기다.

가을은 그렇다. 음양오행(陰陽五行)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북반구에 가을이 오면 식생(植生)은 차츰 말라가다가 잎을 떨군다. 겨울을 견디기 위한 식물 나름의 생존 대응이다. 그런 식물의 조락(凋落)을 부추기는 가을바람은 ‘쓸쓸’하다.

큰 거문고 슬(瑟)은 “쓰윽~ 쓱” 소리를 낸다. 그 둘을 합친 ‘슬슬’이 우리말 ‘쓸쓸’로 변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가을바람의 형용에 잘 등장한다. 소슬바람의 ‘소슬(蕭瑟)’도 같은 맥락이다. 메마른 잎과 가지를 스치는 으스스한 가을바람의 의성(擬聲)이다.

 

가을바람의 별칭은 더 있다. 방위로 표현하는 서풍(西風), 깎고 잘라낸다는 오행상의 쇠붙이 바람 금풍(金風), 쌀쌀하고 차갑다는 의미에서 처풍(凄風)이다. 곧 한 해가 저문다는 아쉬움 때문인지 비풍(悲風)이라는 이름도 얻었다.

요즘 중국에서는 ‘내권(內捲)’이라는 말이 새 유행어다. ‘안으로 쪼그라들다’의 뜻이다. 긴 정체(停滯)와 퇴보(退步)를 지칭한다. 미국과 겪는 심각한 마찰, 경제의 전반적 하강에 따라 혹독해지는 환경을 가리킨다. 어쩌면 이 가을에 불어대는 바람에 잘 어울리는 언어다. 그나마 다가오는 ‘겨울’을 내다보기라도 했으니 낫다. 혹심한 추위를 맞이할지 모를 우리의 채비는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