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동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딱 1년 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쇼(CES)에서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놓고 벌어지는 치열한 기술경쟁의 현장을 둘러보던 중 운 좋게도 조용히 자율주행 시스템을 개발해온 퀄컴의 테스트용 차량을 시승할 수 있었다. 자동차가 사람처럼 ‘눈치’를 본다는 낯선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고속도로 진입로에 들어설 때 왼쪽 뒤에서 달려오는 차를 보고 속도를 조절해가며 ‘밀당’하는 느낌이나, 옆 라인의 차가 갑자기 속도를 올리면서 가까이 다가올 때 소심하게 차선 변경을 ‘자제’하는 느낌은 분명 생소한 체험이었다.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인간과 기계라는 주어와 목적어 관계가 역전되면서 이런 느낌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세상이 올 것이다. 그간 축적 건너뛰고 압축적 발전 게임의 룰 바꾸는 혁신기술 등장 ![]() 지난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쇼(CES) 2020에서 관람객들이 현대차 부스의 개인용 비행체(PAV) 콘셉트 ‘SA1’을 살펴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산업의 종류를 가릴 것 없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게임의 룰을 바꾸는 혁신적 기술들이 등장하고 있다. 2015년 말 미국의 위성발사기업 스페이스X는 위성을 발사하면서 1단 추진체를 회수하는 놀라운 기술을 역사상 최초로 성공시켰다. 작년 11월에는 마침내 유인우주선을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보내면서 동시에 1단 추진체를 정해진 자리에 착륙시키는 장관을 연출하였다. 이 재활용 로켓이라는 개념설계가 안정화된다면, 기존보다 최소 10분의 1 이하의 비용으로 발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날로 커지는 우주산업에서 새로운 표준이 탄생하는 것이다. 집콕 덕분에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이 안방을 장악하면서 텔레비전과 영화 등 기존 미디어 산업의 표준 역시 깨지고 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전통의 기술강국인 독일·일본 기업들도 새로운 차원의 기술을 내어놓기 바쁘고, 게다가 따라잡기 시대는 끝난다고 선언한 중국의 대표기업들도 질세라 인공지능 등 첨단분야에서 중국발 표준을 제시하면서 글로벌 기술경쟁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 퀄컴의 자율주행 플랫폼 ‘스냅드래곤 라이드’도 CES에서 선보였다. [EPA=연합뉴스] 표준으로 등장한 혁신적 기술을 볼 때마다 기가 막힌 아이디어에 감탄하게 되지만, 한편으로 창의성이 부족한 스스로를 탓하면서 좌절감이 드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혁신의 진화 원리에 따르면 이것은 큰 착각이다. 혁신적 기술은 천재적 창의력을 가진 누군가가 하룻밤 새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희미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여, 첫 번째 개념설계를 만들고, 반응을 보고, 경로를 수정하고, 조금 더 달라진 두 번째 버전을 만들어가는 끈질긴 개선의 과정, 이른바 스케일업 과정을 거쳐서 탄생한 것이다. 이 스케일업 과정 중에 흔하디흔한 시행착오와 좌절은 표준으로 가는 ‘서사적 궤적’의 일부일 뿐 결코 실패가 아니다. 이 치열한 도전적 시행착오의 축적이 산업의 표준으로 등장하는 혁신적 기술의 비밀이다. ![]() 셀트리온의 한 연구원이 개발 중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항체 치료제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볕이 쨍할수록 그림자가 짙듯 압축적으로 기술을 습득하는 동안 한 가지 습관이 자리 잡았다. 끈질긴 축적의 시간이 있어야 혁신적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일찍부터 뼈저리게 느꼈지만, 그럴 만한 여유도 시간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시장을 지배하는 선진국의 표준을 빠르게 벤치마킹하여 도입하거나, 응용하고 개량해서 더 좋은 성능을 내는데 목표를 두는 지름길로 택했고, 이 추격 전략은 지금까지 성공했다. 한마디로 한국 기술은 축적의 시간을 생략하면서 속성 성장했다. 오늘의 기술 선진국들도 출발은 모두 같았으니, 한국의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 벤치마킹이 아니라, 도전적 시행착오를 쌓아 스스로 표준에 도전해야 할 단계에 이르러서도 패러다임을 바꾸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이정동 교수 서울대 교수이자 한국과학기술한림원과 한국공학한림원의 정회원이다. 옥스포드 저널인 ‘사이언스앤 퍼블릭 폴리시’(Science and Public Policy)의 에디터이며, 대통령비서실 경제과학특별보좌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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