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헌 산업1팀 기자
생무화과를 맛보는 건 소박한 행복이었다. 할아버지 댁 앞마당에서 자라던 무화과는 추석을 전후로 특유의 색을 뽐내며 익었다. 당(糖)을 이겨내지 못해 터진 무화과엔 여지없이 벌레들이 들러붙었는데 수확 시기를 잘 맞춰 따낸 무화과도 사흘이면 먹기 힘들 정도로 물러졌다. 까탈스러운 과일인 탓에 20년 전만 해도 생무화과를 맛봤다는 이를 주변에서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요즘엔 다르다. 무화과나무를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해 수확 시기도 8월로 당겨졌다. 흔한 과일이 된 것이다.
무화과는 호불호가 명확한 과일이다. 이 무렵 노지에서 수확한 무화과를 베어 물면 특유의 달짝지근한 냄새와 씁쓸한 풀맛이 입안에서 동시에 퍼진다. 이어 작은 알갱이가 씹히는 혼란스러운 식감이 이어지는데 이를 싫어하는 이도 적지 않다.
무화과(無花果) 나무는 이름 그대로 꽃이 피지 않는 식물이다. 흔히 열매로 오해하는 초록색 부분은 꽃받침이다. 칼로 잘라야 볼 수 있는 안의 붉은 부분이 바로 꽃이다. 무화과는 인류가 재배한 최초의 과일 중 하나로 꼽힌다. 1만 년 전 중동과 유럽 남부지대에서 처음으로 재배했다. 그래선지 성경에도 등장한다. 선악과를 베어 문 아담과 이브가 수치심을 느끼며 몸을 가린 게 바로 무화과 나뭇잎이다. 일부 성경학자는 무화과를 선악과로 지목한다.
무화과는 꽃이 안에서 피기 때문에 독자적인 수분(受粉) 과정이 필요했다. 일반적인 식물과 달리 바람이 꽃가루를 퍼뜨려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무화과나무가 선택한 게 말벌과의 상생이었다. 무화과 밑에는 작은 구멍이 있는데 무화과 말벌(fig wasp)은 이 통로를 통해 꽃 안으로 들어간다. 꽃으로 들어간 말벌 암컷은 알을 까고 숨진다. 이런 과정을 통해 수분이 이뤄지고 무화과는 말벌의 알을 보호한다. 무화과와 말벌의 상리공생(相利共生)은 7000만~9000만년 전에 완성됐다. 이런 공생을 이유로 채식주의자 중에선 무화과를 입에 대지 않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국내엔 무화과 말벌이 서식하지 않기에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세계은행은 코로나 확산으로 올해에만 8800만~1억1400만명이 극빈층으로 전락했다고 추정했다. 국내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상리공생이 무엇보다 절실한 시기다.
강기헌 산업1팀 기자
[출처: 중앙일보] [분수대] 무화과와 말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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