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낙화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낙화
분신이 억만 천만
바쁘게 흩어져도
의구하다 옛 가지는
억세게도 버텨 섰네.
틀림없이 봄의 신이
수레 돌려 떠나고자
미리부터 온 대지에
향을 뿌려 놓았구나.
바람 불고 비가 내려
꽃의 운명 결판나니
나는 제비 우는 꾀꼬리
적막 신세 꼴이로다.
절대(絶代)의 가인이라
애도문을 써야 하니
고운 창자 시인 중에
누굴 골라 맡길 텐가?
暮春賦落花
分身散去億千忙(분신산거억천망)
依舊枝株影木强(의구지주영목강)
定識東皇將返駕(정식동황장반가)
先敎大地盡鋪香(선교대지진포향)
風風雨雨關終始(풍풍우우관종시)
燕燕鸎鸎遞踽凉(연연앵앵체우량)
絶代佳人宜作誄(절대가인의작뢰)
有誰才子錦爲腸(유수재자금위장)
화려했던 꽃의 향연도 끝날 무렵 우념재(雨念齋) 이봉환(李鳳煥·?~1770)이 명사들과 함께 낙화를 노래했다. 꽃나무에서는 분신이 수도 없이 떨어진다. 그것은 지상을 떠나려 하는 봄의 신을 배웅하고자 뿌린 향이자 깔아놓은 양탄자다. 비가 내리면 피었다가 바람 불면 떨어지는 것이 그의 인생, 제비 날고 꾀꼬리 울건마는 쓸쓸히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꽃은 져도 꽃이다. 그 절대가인(絶代佳人)이 사라지는 길에 그대로 보낼 수는 없다. 재사(才士) 중에서 재사가 애도문을 써야 어울린다. 평소 가슴 깊숙이 감춰두었던 향기로운 언어를 꺼내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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