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가슴으로 읽는 한시] 한 해가 간다

bindol 2021. 3. 15. 04:36

[가슴으로 읽는 한시] 한 해가 간다

안대회·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입력 2012.12.28 23:09

 

 

 

 

한 해가 간다

창가에 쓸쓸히 앉아 친구들을 그리노니
계절 따라 풍경은 어수선하게 바뀌었다.
덧없는 인생은 바람에 날리는 낙엽
저무는 한 해는 전쟁에 패한 군사.
사람들은 묵은해 간다고 환호하지만
심란한 벗의 마음은 산 너머 구름이리라.
가득 따른 술잔일랑 취기 어려 남겨두고
책상 위 낙지론(樂志論) 을 다시 펼쳐 읽어본다.

 

歲除用前韻(세제용전운)

梢梢軒窓念我??(초초헌창염아군)
推遷時物自繽紛(추천시물자빈분)
浮生但覺風飄葉(부생단각풍표엽)
殘歲爭如戰敗軍(잔세쟁여전패군)
氓俗歡聲除舊日(맹속환성제구일)
故人心緖隔岡雲(고인심서격강운)
十分盞酒留餘醉(십분잔주유여취)
重讀牀頭樂志文(중독상두낙지문)

 

*낙지론: 중국 후한 때 중장통(仲長統)이 지은 글로 전원에서 자유롭게 사는 행복을 노래함.

조선 후기의 저명한 실학자인 성호(星湖) 이익 선생이 친구들과 한 해를 보내며 몇 편의 시를 지었다. 사람들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느라 떠들썩하게 오가고 행사를 벌이며 들떠 있다. 함께 어울려 자기도 들뜬 기분으로 세밑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성호에게 연말 풍경은 전쟁에 패퇴한 군대처럼 어수선하고 인생은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처럼 덧없다. 그도 친구들도 심란하다. 술을 가득 따라 놓으나 더 취할 기분도 아니다. '낙지론'을 펼쳐놓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라앉는다. 아무리 쪼들리고 위축되어도 작은 행복에 만족하며 자유롭게 사는 인생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