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송붕(松棚)
안대회·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송붕(松棚)
작은 초가라서 처마가 짧아
무더위에 푹푹 찔까 몹시 걱정돼
서늘한 솔잎으로 햇살을 가려
한낮에도 욕심껏 그늘 얻었네
새벽에는 이슬 맺혀 목걸이로 뵈고
밤에는 바람 불어 음악으로 들리네
도리어 불쌍해라, 정승 판서 집에는
옮겨 앉는 곳마다 실내가 깊네
小屋茅簷短(소옥모첨단)
偏愁溽暑侵(편수욕서침)
聊憑歲寒葉(요빙세한엽)
偸得午時陰(투득오시음)
露曉看瓔珞(노효간영락)
風宵聽瑟琴(풍소청슬금)
却憐卿相宅(각련경상댁)
徙倚盡堂深(사의진당심)
―권필(權韠·1569~1612)
'조선조 제일의 시인'이라는 칭송을 듣던 권필의 시다. '송붕(松棚)' 또는 '송첨(松簷)'은 소나무 가지를 처마에 덧대어 햇살을 막는 차양(遮陽)이다.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려는 선인들의 운치있는 고안품이다. 가난한 시인이 송붕 아래 걸터앉아, 무더위에 그늘 아래 지내는 호사를 가난뱅이도 누릴 수 있다고 한껏 자랑한다. 송붕은 시원한 그늘만 선물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새벽이면 이슬이 맺히고 밤이면 솔바람 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오니, 마치 귀족들이 차고 다니는 값비싼 목걸이처럼 보이고 현악기의 합주처럼 들린다. 어찌 보면 고래등 같은 집의 깊숙한 방안에 처박혀 지내는 귀인(貴人)들보다 더 시원하게 여름을 보낸다는 생각도 든다. 무더위를 이기는 데 꼭 좋은 집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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