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67> 시집가고 장가간다; 결혼이 맞나?

bindol 2021. 4. 20. 04:53

남자가 장가가고 여자가 시집가는 것을 결혼이라 한다. 그게 맞을까?

장가(杖家)란 장인이 사는 집이다. 장(丈)은 키가 열(十) 뼘(又)이나 되는 나이 드신 큰 어른이다. 자기의 아버지는 아무리 어른이라도 장인(丈人)이 아니다. 다만 나를 키워주신 아버님일뿐이다. 하지만 신랑의 관점에서 볼 때 신부의 아버지는 아무리 키가 작아도 어려워서 크게 보이기 마련이니 장인이다. 똑같은 뜻의 말을 한 번 더 반복강조하여 장인어른이시다. 장인의 아내는 장모다. 요즘은 결혼을 결혼식장에서 하지만 옛날에는 장인의 집인 장가에서 했다. 요즘은 주로 낮에 하지만 옛날에는 해가 저무는 저녁에 했다. 예식을 치르고 나면 곧바로 어두운 밤이 되어 신랑과 신부는 설레는 첫날밤을 맞이했다. 이렇듯 남자가 장가드는 일이 장인의 딸인 여자(女) 집에서 해 질 무렵인 황혼 녘(昏)에 이루어지므로 혼(婚)이란 장가에 드는 것을 뜻한다.

시가(媤家)인 시집이란 시부모가 사는 신랑의 집이다. 남녀 한 쌍이 한 몸으로 맺어진 초야를 치른 다음 날 여자는 자기를 길러준 부모 품을 떠난다. 꽃가마를 타고 시부모가 사는 시집으로 가는 것이니 이를 인(姻)이라 한다. 요약하자면 장가갈 혼(婚), 시집갈 인(姻)이다. 그러니 결혼은 남자 중심의 틀린 낱말이다. 혼인이라 해야 남녀 평등 차원에서 맞는 낱말이 된다. 민법에도 결혼이 아니라 혼인으로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혼인이라고 하면 익숙지 않고 어색하다. 혼인식장도 이상하다.

잘못된 점을 금방 고칠 수는 없다. 다만 잘못을 알 필요는 있다. 오로지 실용 추구의 시대에 밥먹여주지 않는 것을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게 여겨진다. 하지만 밥먹여주지 않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때 세상은 맞게 돌아간다.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