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32> 신앙과 종교 ; 벌어지는 차이

bindol 2021. 4. 20. 05:23

두 단어는 별 차이 없이 들린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하면 차이가 살며시 벌어진다.

 

신앙이나 종교를 영어로 하면 'religion'이다. 이 단어는 다시(re) 묶다(lig)에 명사형 접미사(ion)의 합성어로 튼튼하게 묶인 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릴리지언은 내가 무엇에 강하게 묶여 의지하는 것으로 종교보다는 신앙에 가깝다. 신앙이란 절대적 존재에 묶여 의지하며 믿고(信) 우러르는(仰)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느)님을 믿는 기독교·천주교 신앙, 부처님을 믿는 불교 신앙, 알라신을 믿는 이슬람 신앙, 시바나 강가 등과 같은 인도 신화의 여러 신들을 믿는 힌두교 신앙은 릴리지언이다. 어떤 동물이나 식물을 신성시하는 토테미즘, 물신숭배의 애니미즘, 신과 접하는 초능력자를 통한 샤머니즘 등도 릴리지언이다. 릴리지언에 가까운 신앙과 달리 종교는 릴리지언과 거리가 있다. 종교는 믿고 우러르는 신앙과 달리 높은·으뜸의·근본적인(宗) 가르침(敎)이기 때문이다. 높은 마루를 뜻하는 종(宗)은 신성시되는 것이라기보다 근본시되는 것이다. 원래 종(宗)의 의미는 어느 집안()에서 제사지내는 (示) 곳이다. 제사 대상은 신성시되는 초월적 존재라기보다 가장 근본적으로 생각되는 인간적 존재다. 그 분의 근본적 가르침이 종교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을 믿고 우러르는 것이 신앙이라면, 지저스 크라이스트, 고다마 싯다르타와 같은 같은 성현이나 선각자께서 살아생전에 들려주시는 근본적 가르침이 종교다. 기복(祈福)을 위한 믿음이 아니라 가르침에 따라 온전히 사는 것이 종교적 삶이다.

 

강하게 묶여 의지하며 믿고 우러르는 신앙에 앞서 근본적 가르침인 종교의 말씀을 잘 들으며 살아 가면 바람속 먼지와 같은 우리 삶에 생기가 난다.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