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닦을 수(人 - 8)몸 신(身 - 0)다스릴 치(水 - 5)나라 국(口 - 8)
朱熹(주희)는 大學(대학)을 "大人(대인)의 學問(학문)"으로 풀이한다.
대학이 대인의 학문이라면, 小人(소인)의 학문도 있을 법하다. 그게 小學(소학)이다. '소학'이라는 책도 있다. 그런데 '소학'은 '예기'가 편찬될 때 있었던 책이 아니다. 주희가 지시하여 그 제자 劉子澄(유자징)이 편찬한 책이다.
'소학'은 유교의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도덕규범을 아동에게 가르치기 위해 갖가지 經典(경전)들과 書冊(서책)들에서 긴요한 내용들을 가려 뽑아 완성한 것이다. 흔히 소학의 공부를 간단하게 '灑掃應對(쇄소응대)'라고 하는데, 쇄는 물 뿌리는 일을, 소는 마당 쓰는 일을, 응대는 손님을 맞이하거나 어른이 부를 때 대답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어린 사람이 어른이 되어 생활할 때 반드시 필요한 기본적인 예법들을 익히는 과정이다.
이렇게 신유학이 등장한 뒤에는 유자의 길을 가려는 이라면 반드시 먼저 '소학'을 익히고 그 다음에 '대학'을 읽어야 했다. 문제는 본래의 '대학'이 아니라 주희가 개정한 '大學章句(대학장구)'를 읽으며 주희의 해석을 주로 따랐다는 사실이다. 성리학적 이념이 공고해진 조선 후기에는 주희의 해석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주희와 다른 해석을 가하면, 이른바 '斯文亂賊(사문난적)'으로 내몰렸다.
이는 학문과 사상에서 專制(전제)와 橫暴(횡포)를 일삼은 것인데, 이것이 결국 창조적인 사유를 가로막아 정치·사회·경제 각 방면에서 停滯(정체)가 일어난 이유였다.
또 성리학적 관점에서는 '대학'을 주로 수신(修身)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그치는데, 이는 '대학' 본래의 의의에서 벗어난 것이다.
'대학'은 본디 治國(치국)의 요체를 다룬 글이다. 後漢(후한) 때의 鄭玄(정현, 127∼200)은 '대학'을 "넓게 배워 정치를 하는 데 활용하는 바탕"으로 생각했다.
'대학'의 뜻을 소박하게 말하면, "큰 배움 또는 크게 배운다"가 된다. 달리 말하면, "큰일을 위한 학문 또는 큰일을 배운다"로 풀이할 수 있는데, 이때 큰일이란 바로 통치 또는 정치다.
나라를 다스리며 백성을 교화하는 일이 유가에서는 가장 중요하고 큰일이었다.
바로 그런 큰일을 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덕목이나 능력이 무엇이며, 어떻게 배울 것인가에 대해 간결하게 적고 있는 책이 대학이라는 말이다.
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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