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12> 昏德과 明德

bindol 2021. 5. 31. 17:46

- 어두울 혼(日-4)덕 덕(-12) 밝을 명(日-4)덕 덕(-12)

춘추시대 이전에 이미 낌새가 있었지만, 춘추시대가 시작되면서 덕보다 힘이 대세가 되었다. 예악이 무너졌다는 것도 이런 뜻에서 한 말이다. 예악의 토대가 바로 덕이기 때문이다. 덕이 간과되면, 당연히 예악은 설 곳이 없다. 그나마 有名無實(유명무실)해진 주 왕실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오랫동안 덕이 정치의 근간으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예악이 무너졌다고 해서 그러한 인식까지 단번에 바뀌지는 않는 법이다.

'左傳(좌전)'의 '魯宣公(노선공)' 3년에 다음 이야기가 나온다. 기원전 606년, 楚(초)나라 莊王(장왕)이 陸渾(육혼)에 사는 오랑캐 戎(융)을 치고 난 뒤에 그 위세를 몰아 雒水(낙수)로 가 周(주)나라 영토 안에서 군사 시위를 했다. 주나라 定王(정왕)은 대부 王孫滿(왕손만)을 보내 장왕을 위로하게 했다. 이때 장왕은 왕손만에게 九鼎(구정)의 크기와 무게를 물었다. 구정은 夏(하) 왕조를 세운 禹王(우왕)이 천하의 九州(구주)에서 모아들인 구리로 만든 솥으로, 천하를 다스릴 덕과 정통성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장왕이 이 구정의 크기와 무게를 물었다는 것은 곧 천하를 차지하려는 野慾(야욕)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왕손만은 이렇게 대답했다.

"천자가 되는 것은 덕에 있지, 솥의 크기나 무게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 夏(하)나라가 덕을 갖추었을 때, 먼 곳의 나라들이 각각 그 나라의 산천과 물산을 그림으로 그려 올리고 구주의 수령들이 구리를 바쳐 솥을 만들었습니다. 그 솥에 갖가지 모양을 새겨 넣어 온갖 것들의 형상을 다 갖춰 백성이 神物(신물)과 怪物(괴물)을 구분하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내와 못에 들어가고 산과 숲에 들어가더라도 妖邪(요사)한 것을 만나지 않게 되고 또 도깨비나 요괴 따위를 만나지 않게 되었으므로 위와 아래가 화합하여 하늘의 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桀王(걸왕)이 昏德(혼덕, 어두운 덕)을 지니자 구정이 商(상)나라로 옮겨져 600년이 흘렀고, 다시 상나라의 紂王(주왕)이 포학하게 굴자 구정은 周(주)나라로 옮겨졌습니다. 덕이 아름답고 밝으면 비록 솥이 작더라도 무겁습니다.

그러나 간악하고 어리석으면 비록 솥이 크더라도 가볍습니다. 하늘의 복과 明德(명덕, 밝은 덕)에도 한도가 있습니다. 주나라 成王(성왕)이 郟鄏(겹욕, 지금의 낙양)에 구정을 안치하고 점을 치자 30代(대) 700년으로 나왔으니, 이는 하늘이 명한 것입니다. 주 왕조의 덕이 비록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천명은 아직 바뀌지 않았습니다. 구정의 무게는 물을 것이 못 됩니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