맺을 결(糸- 6)풀 초(艸 - 6)갚을 보(土 - 9)은혜 은(心 - 6)
'左傳(좌전)'의 '魯宣公(노선공)' 15년에 나오는 이야기다. 晉(진)나라의 魏武子(위무자)에게 애첩이 있었는데, 자식을 두지는 못하였다. 위무자가 병이 들자, 아들 魏顆(위과)를 불러 이렇게 분부하였다.
"내가 죽으면 반드시 이 여자를 改嫁(개가)시켜라!"
그런데 병세가 더 깊어지자 다시 분부하였다.
"내가 죽으면 반드시 이 여자를 殉葬(순장)하라!"
마침내 위무자가 죽자, 위과는 여자를 개가시키면서 말하였다.
"병세가 깊어지면 정신이 어지러워지는 법입니다. 나는 아버님이 정신을 잘 추스를 때 하신 말씀을 따랐습니다."
그 뒤 위과가 輔氏(보씨) 땅에서 秦(진)나라 군사와 싸울 때, 한 노인이 풀을 묶어서 秦(진)나라의 力士(역사)인 杜回(두회)가 나아가지 못하게 막았다. 두회는 그 풀에 걸려 넘어졌고, 위과는 그를 손쉽게 사로잡았다. 그날 밤, 위과의 꿈에 그 노인이 나타나 말하였다.
"나는 그대가 再嫁(재가)시킨 여자의 아비라오. 돌아가신 그대의 아버지가 정신이 맑았을 때 내린 분부를 그대가 좇았기에 내가 이로써 보답한 것이오."
'結草報恩(결초보은)'이라는 成語(성어)로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병든 위무자는 처음에는 明德(명덕) 곧 밝은 덕으로 분부를 내렸고, 병세가 깊어지자 昏德(혼덕) 곧 어두운 덕으로 분부를 내렸다. 이것이 사람이다. 사람이란 아무리 덕이 있어도 몸이 허약해지면 그 덕까지 미약해진다. 이렇게 덕은 참으로 중요하고 고귀한 것이지만, 쉽사리 변질될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참으로 인간적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맑은 정신일 때든 흐린 정신일 때든 그 덕을 한결같이 쓸 수 있어야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하물며 온 세상 선비들이 立身(입신)과 揚名(양명)에 혈안이 되고 모든 나라 군주가 부국과 강병에 목매는 시대라면, 어찌 그 덕을 잘 간직하고 쓸 수 있겠는가?
유가에서 요와 순을 聖君(성군)으로 떠받들고, 하 왕조를 일으킨 우왕과 상 왕조를 일으킨 탕왕, 주 왕조를 연 문왕과 무왕을 그토록 높이는 까닭은 아이러니하게도 덕을 오롯이 체득하고 덕으로 다스리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반증이다. 성군은 드물고 昏君(혼군)이 훨씬 많다는 데서도 입증된다. '좌전'과 '戰國策(전국책)'은 성군의 길이 참으로 요원함을, 덕치가 매우 실현하기 어려운 정치임을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어 저술된 것이 '대학'이다.
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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