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우칠 유(口-9)다스릴 치(水-5)
사물의 법칙을 알지 못하면 중요한 순간에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일도 쉽지 않다. 결정을 내려도 어긋나기 십상이다. 군자라는 평판이 있다 하더라도 사물의 세계를 모른다면, 그는 한낱 빈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잘 차려입은 허수아비와 같아서 치국평천하는커녕 修身(수신)이나 齊家(제가)의 여부조차 의심스럽다.
한낱 빈껍데기에 불과하면서 스스로 어질고 현명하다며 행세하던 유자들이 전국시대에는 무척 많았다. 그런 유자들을 두고 사마천은 '사기' '貨殖列傳(화식열전)'에서 이렇게 비판했다. "집안이 가난하고 어버이는 늙고 처자는 연약하며, 철이 되고 때가 되어도 제사를 지내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것이나 의복이 부족하여 남들과 어울리지도 못하면서 이를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면, 견줄 데 없을 정도로 못난 사람이다."
비루하게도 남의 집 잔치나 제사에 기웃거리며 얻어먹는 주제에 군자는 어떠해야 하느니, 백성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느니 따위 말을 늘어놓는다면, 누가 귀를 기울여 들을 것이며 또 누가 그를 기용할 것인가?
漢(한) 武帝(무제) 이후로 유학이 국가의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유가의 통치술은 도리어 편협해지고 고루해졌다. 경쟁할 학파가 없어진 탓이다. 그로 말미암아 불교나 도교에 밀려 宋代(송대)에 이르기까지 한낱 공허한 학술로 전락하고 정치 이념으로만 남게 되었다.
시세를 파악하지 못하고 또 시대의 병통을 치유할 계책도 능력도 갖추지 못한 채 관리 노릇을 하거나 관리가 되겠다고 하는 유자들 또는 지식인들을 날카롭게 풍자하기 위해서 元末明初(원말명초)의 劉基(유기, 1311∼1375)는 '郁離子(욱리자)'라는 책을 썼다. 이른바 寓言(우언)으로 된 산문집이다. 거기에 '喩治(유치)'라는 글이 있는데, 통치를 치료에 비유한 내용이다.
"천하를 통치하는 이는 의사와도 같다. 의사는 맥을 짚어 증세를 알아 잘 살펴서 처방을 내린다. 증세에는 음양과 허실이 있고, 맥에는 부침과 강약이 있으며, 처방에는 땀내기·보양·침구·탕제 따위의 방법이 있고, 인삼·복령·생강·계피·麻黃(마황)·芒硝(망초) 따위 약이 있다. 맞으면 살아나고 맞지 않으면 죽는다. 따라서 증세를 알고 맥을 알아 잘 처방하지 못한다면 의사가 아니다. 비록 扁鵲(편작)과 같은 견식을 지녔어도 떠들어대기만 하고 치료하지 않으면, 또는 증세도 모르고 맥도 모르면서 남의 허튼소리를 따라 처방을 내리고는 사람들에게 '나는 유능한 의사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천하를 해치는 존재다. 이처럼 治亂(치란)은 증세이고, 기강은 맥이며, 도덕과 정치·형벌은 처방과 조제법이고, 인재는 약이다."
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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