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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夜喜雨 / 杜甫

bindol 2021. 8. 9. 06:55


【春夜喜雨】-어느 봄밤 반가운 비

-두보【杜甫;712-770】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
좋은 비는 시절을 알고 내리나니

當春乃發生【당춘내발생】
봄이면 초목이 싹트고 자란다

隨風潛入夜【수풍잠입야】
봄비는 바람 따라 몰래 밤에 들어

潤物細無聲【윤물세무성】
가늘게 소리도 없이 만물을 적신다

野徑雲俱黑【야경운구흑】
들길과 하늘의 구름 모두 어두운데

江船火獨明【강선화독명】
강가의 배에 불빛 번쩍번쩍

曉看紅濕處【효간홍습처】
이른 아침 붉게 젖은 땅을 보니

花重錦官城【화중금관성】
금관성엔 꽃 활짝 피었으리


이 시는 두보의 나이 49세 때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기는 두보가 관리생활을 청산하고 촉의 성도로 옮겨

초당을 짓고 살아갈 때이다.

결국 그가 58세의 죽음을 감안하면 인생의 온갖 풍상을 다 격고

인생을 음미하고 정리하는 성숙한 시기로 생각할 수 있다.


♡ 1,2 구절을 보자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좋은 비는 시절을 알고 내리나니

當春乃發生【당춘내발생】봄이면 초목이 싹트고 자란다.

여기서 “좋은 비【好雨】”란 어떤 비인가?
그리고 나쁜 비는 또 어떤 비인가?
작가는 그 답을 바로 제시한다.

곧, “시절을 알고 내리는 비【知時節】”를 좋은 비라고 한다.

그러면 시절을 알고 내리는 비는 어떤 비인가? 작가는 2 구절에서,
“봄이면 초목이 싹트고 자란다【當春乃發生】”고 말한다.

즉 봄을" 생명을 싹트게 하고 성장하게 하는 시절"로 이해하는 것이다.

결국 작가의 생각은 “생명을 싹트고 성장하게 함에는,

때 맞춰 내리는 봄비가 그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렇다. 초목이 싹터서 자라는 중요한 조건은 따뜻해진 날씨와 비옥한 토지,

그리고 적당한 비인 것이다.

♡ 3,4 구절을 보자

隨風潛入夜【수풍잠입야】봄비는 바람 따라 몰래 밤에 들어
潤物細無聲【윤물세무성】가늘게 소리도 없이 만물을 적신다.


그러면 초목의 탄생과 성장에 필요한 “비”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폭우나 장마와 같은 비는 초목의 씨앗을 땅에서 떠내려가게 하고,

싹튼 초목의 뿌리를 뽑고 급기야는 초목을 다 휩쓸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생명의 좋은 봄비는 어떻게 내려야 하는가?

두보는 말한다. 봄비는 봄바람 따라서【隨風】와야 하고,

몰래 밤에 내려야 한다【潛入夜】고 주장한다.

왜인가? 봄바람은 따뜻한 공기를 몰고 와서 대지에 골고루

따뜻한 기운을 전하는 전파의 작용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봄비도 바람을 따라와야 대지에 고루 비를 뿌릴 수 있다는 생각이다.

다음으로, 봄비는 왜 몰래 밤에 내려야하는가?

밤은 삼라만상이 낮의 활동으로 피곤한 몸을 쉬고 휴식하는 시간이다.

이 때 봄비가 초목에 내리면, 초목은 다른 어떠한 생명으로 부터의 방해도 없이,

봄비라는 생명수를 받아
【潤物】 성장할 수 있는 시간으로 본 것이다.
마치 어머니 자궁의 양수 속에서 편안히 자라나는 아기와 같이,

초목은 밤의 품속에서 밤비를 맞으며 생명의 싹을 트고 자라는 것이다.

밤은 초목의 세상이다.

풀을 좋아하는 토끼도 소도 말도 인간도 밤에는 활동하지 않는다.

밤은 초목의 자궁이요, 밤비는 양수인 것이다.

그리고 왜 가만히 내려야 하는가? 그것은 간단하다.

봄의 초목은 여름의 짙푸르고 울창하게 성장한 초목이 아니다.
이제 씨앗에서 나오려하거나, 이제 막 지각을 뚫고 나온 새싹인 것이다.

그러므로 소나기처럼 내려서는 안 된다.

어머니가 아기에게 젓을 먹이듯이,

물뿌리개로 화단에 물 주듯이 그렇게 조심스럽게 주어야 하는 것이다.

무릇 모든 생명의 탄생에는 밤의 휴식이라는 긴 시간과

어둠이라는 신비와 정적이라는 정성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무성한 여름의 초목에는 소나기가 제격일 것이다.

봄비는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좋은 비는 시절을 알고 내리는 비인 것이다.


♡ 5,6 구절을 보자

野徑雲俱黑【야경운구흑】들길과 하늘의 구름 모두 어두운데
江船火獨明【강선화독명】강가의 배에 불빛 번쩍번쩍

여기서는 생명의 탄생과 성장을 위한 조건이 성숙되어가는 자연 모습과

그 생명의 탄생을 눈으로 목격하고 인식하면서 이를 즐거워하는

오직 하나의 존재인 강가 배 속의 불로 상징되는 작가의 깨어 있는 의식이 표현되고 있다.

생명인 초목은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것이다.

땅에 뿌리내리고 하늘의 햇볕과 비늘 맞으며 말이다.

그런데 하늘은 이제 검은 구름이 모여들어 비를 준비하고

시간은 이제 밤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래서 땅인 들길은 어두워지는 것이다. 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野徑雲俱黑】 마치 어머니의 자궁 안의 환경이 되어가고 있다는 비유다.

그러나 천지가 어두운 밤에도 생명의 탄생을 지켜보고 증언이나 하듯이 잠들지 않은 것,

어둡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그것은 강에 뜬 배에 반짝이는 불빛이다

【江船火獨明】. 물론 이 불은 또 그 나름대로의 속성으로 어부가 고기잡이를 위해

켜 놓은 그 나름의 작용을 하는 또 하나의 자연 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잠자지 않고 생명의 밤을 의식하는 작가의 내면의식의 객관적 상관물이다.

♡ 7,8 구절을 보자

曉看紅濕處【효간홍습처】이른 아침 붉게 젖은 땅을 보니

花重錦官城【화중금관성】금관성엔 꽃 활짝 피었으리

여기서는 6,7 구절에서 조성한 초목의 생명 탄생과 성장을 위한 비 내리는 밤을

지난 결과 나타나는 변화를 표현하고 있다.

우선 작가는 새벽,

여명이 돋는 새벽의 밤비에 촉촉이 젖어 붉게

피어난 꽃들을 누구보다도 먼저 보았다.【曉看紅濕處】

그리고 생각하는 것이다. 날이 환히 밝으면,
금관성 곳곳에는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곳처럼 온갖 꽃들이 활짝 피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花重錦官城】. 여기서 “금관성”은 작가가 은퇴하여 살고 있는 성도【成都】의 별칭이다.


♡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이 시는 인생의 온갖 고초를 다 격고

마지막 관직까지 그만둔 두보가 고향으로 돌아와 전원에서 살면서 지은 시다.

이 시기에 그는 정말 평범한 한 농부가 되어 한 해의

농사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때맞춰 비가 오기를 바라고 있는데 마침 밤비가 내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대단히 흡족한 상태가 된 것이다.

이러한 흡족한 마음에서 그의 생각은 비의 속성과 관련하여 인생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위대한 시혼이 발동한 것이다.

그는 정치에서 떠났지만 위정자에 의해서 버려진 백성의 질고와 자신의 불우한 처지는

늘 자신의 의식 깊숙한 곳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를 자극하는 외부의 자극물이 나타나면 그는 또 하나의 깊은

의미를 담은 언어체계 곧 시를 짓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는 비, 밤, 바람, 꽃이라는 자극물이 두보를 자극한 것이다.

이 시에서 두보는 는 내면적 의미를 느끼게 한다.

물론 이러한 견해는 너무 지나치게 비약한 해석이라 비판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물론 순수한 전원시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이 시에 대한 여러분의 천착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퍼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