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別曲] [158] 뒤숭숭한 중국 부동산
입력 2021.09.24 00:00
당나라 때 천재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일화다. 16세 청년 백거이는 수도 장안(長安)으로 가 당시 저명했던 문인 고황(顧況)에게 자신의 시작(詩作)에 대한 품평을 부탁했다. 어린 백거이를 우습게 봤던 고황은 그의 이름을 두고 이런 농담을 했다.
“요즘 쌀값이 비싸 살기조차 쉽지 않을 것(米價方貴, 居亦弗易).” 백거이의 이름 풀이인 ‘편히 살다(居易)’를 살짝 비틀며 그를 낮춰 본 셈이다. 그러나 그의 시를 읽어본 고황은 “충분히 살아갈 수 있겠다”며 곧 자세를 고쳤다고 한다.
중국인이 품는 소망의 으뜸은 성장해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갈 경제적 토대를 확보하는 일이다. 이른바 성가입업(成家立業)이다. 조상이 물려준 혈통을 이어야 하는 점[成家]이 생업 확보에 앞서 있다.
그 가정을 이루기 위한 선결(先決) 조건은 살아가야 할 곳을 구비하는 일이다. 따라서 ‘안거(安居)’의 심리가 퍽 발달했다. 집 마련에 집착하는 정서다. 가옥(家屋), 방옥(房屋), 가택(家宅)을 향한 욕망이다. 요즘 중국에서는 흔히 방자(房子)라고 한다.
위의 백거이 일화는 성어를 하나 낳았다. “머물기 결코 쉽지 않다(居大不易)”는 말이다. 환경 좋은 곳에서 살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거주하기 좋은 공간에 대한 수요는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는 셈이다.
요즘 중국인들은 더 허덕인다. 집의 노예라는 뜻의 ‘방노(房奴)’라는 유행어가 나온 지도 꽤 오래다. 마구 치솟는 집값 때문에 허리띠를 졸라매며 모은 돈에 은행 대출을 얹어 큰 도시 아파트를 구매한 서민이 부지기수다.
그런 중국인의 심리에 올라타 호황만을 누리던 중국 부동산 업계에 위기가 닥쳤다. 대형 기업들의 파산 경고음이 불거졌다. 잔뜩 낀 거품은 빼야 좋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경기마저 더욱 가라앉히는 부작용 또한 크다. 중국의 이번 가을도 퍽 뒤숭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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