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성인식]
양반집 남자아이는 15~20세 때 상투 틀고 옷 갈아입으며 예식 배워
여자아이는 머리 풀고 쪽을 찌어
평민, 무거운 돌 들어 힘자랑… 어른들에게 술자리 마련해 신고식
오늘은 5월 셋째 월요일, 성년의 날이에요. 만 19세가 된 젊은이들에게 어른이 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주고 성인이 된 것을 축하해주는 기념일이지요. 이날 성년을 맞은 청년들은 장미꽃을 선물로 주고받거나, 단정한 옷을 차려입고 부모님께 축하 덕담을 듣곤 해요.
조선시대에도 청소년에서 어른으로 한 단계 넘어가는 것을 기념하는 의식인 성년례(成年禮·성년이 되면서 치르는 의례)가 치러졌답니다. 과연 조선시대의 성인식 때 어떤 행사가 열렸는지 역사 여행을 떠나볼까요?
◇조선시대 양반 남성의 성인식 '관례'
"너희들 우르르 몰려서 어디 가니?" "개똥이네 집에. 개똥이 집에서 댕기풀이(관례 축하 잔치) 한대." "오늘 개똥이가 관례를 치른다더니 관례를 마치고 댕기풀이를 하는구나." "그래, 개똥이가 우리 중에 가장 먼저 어른이 되었어." "개똥이가 뭐야? 이제부터는 자(字)로 불러야지." "자? 그게 뭔데?"
조선시대 어느 양반집 아들이 관례(冠禮)를 치렀나 봐요. 관례는 오늘날의 성년의 날 행사로, 남자가 머리에 상투를 틀고 갓을 쓰는 의식이라는 의미예요. 갓은 한자로 관(冠·갓 관)이지요.보통 남자아이가 15~20세 때 관례를 치르는 것이 원칙이었지요.
▲ /그림=이혁
조선시대 관례는 고려 왕실의 성년례 풍습이 양반 계층에까지 널리 퍼진 것이랍니다. 고려사라는 역사책에는 '고려 광종·예종·의종 때 왕태자에게 성인의 옷을 입히며 성년례를 치렀다'는 내용이 있지요. 조선시대부터 왕실뿐 아니라 많은 양반이 관례를 치른 배경은 유교의 영향이 커요.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였던 사마광(1019~1086)은 관례를 치를 시기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어요. "옛날에는 20세에 관례를 하였는데 이는 장차 자식 된 자, 아우 된 자, 신하 된 자, 젊은 자로서의 행동을 그 사람에게 책임지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의식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중략) 우선 15세 이상부터 '효경'과 '논어'를 잘 알아 조금이나마 예의를 알게 된 다음에 관례를 행한다면, 그 또한 괜찮을 것이다." 중국 12세기 남송시대에 쓰인 예의범절 책 '주자가례'는 가정에서 지켜야 할 예의범절을 기록한 책이에요. 17세기 조선 사대부들은 이 주자가례에 쓰인 관혼상제(冠婚喪祭)를 사람이 일생 동안 거쳐야 할 의례의 기본으로 삼았대요. 관혼상제란 성년례(성인식)인 관례와 더불어, 결혼 의식인 혼례(婚禮), 사람이 죽었을 때 장사를 지내는 예식인 상례(喪禮), 죽은 조상을 기리며 제사를 올리는 제례(祭禮)를 뜻해요. 의례의 종류가 4가지라는 의미로 관혼상제를 '사례(四禮)'라고도 부르지요. 유교에서는 관혼상제 때 지켜야 할 예법을 구체적으로 적어놓고 따르는 일을 무척 중요하게 여겼어요. 유교를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은 관혼상제를 가정생활의 원칙으로 여겼고요.
그렇다면 개똥이의 관례는 어떤 절차로 진행되었나 살펴볼까요? 관례를 치르기 사흘 전, 개똥이네 아버지는 사당에 술과 과일을 마련하여 올리고, 자신의 친구 중에 예법을 잘 아는 사람을 빈객(賓客·귀한 손님)으로 청해 집에 머물게 했어요. 관례 날 하루 전, 대청마루의 동북쪽에 휘장을 쳐서 관례 장소를 마련했어요. 개똥이 아버지가 평소에 사용하는 사랑방을 관례 치르는 장소로 사용하기도 하지요. 관례를 치르는 당일, 개똥이는 머리를 빗겨 올려 상투를 틀고, 모자와 옷을 각기 다른 것으로 세 번씩 갈아입는 의식을 치러요. 그리고 술을 마시는 예절을 배웠지요. 그다음에 아버지 친구인 빈객이 개똥이에게 자(字·관례를 치르며 받는 어른 이름)로 '현명'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어요.
이렇게 하면 관례의 절차가 거의 끝나는데, 현명이 아버지는 관례를 받은 아들 현명이를 데리고 사당에 가서 관례를 마쳤음을 고하고, 현명이가 이웃 어른들에게 차례로 인사를 올리게 해요. 또한 현명이의 친구들을 초대해 '댕기풀이'라는 축하 잔치를 열죠.
◇여성은 땋았던 머리 풀고 비녀 꽂는 '계례'
조선시대 양반 여자들의 성년례는 계례(笄禮)라고 불렀어요. 여자아이가 땋았던 머리를 풀고 쪽을 찌어 비녀를 꽂는 의식이었기 때문이지요. 비녀는 한자로 계(笄·비녀 계)지요. 15세가 되는 해의 정월(1월) 계례를 치른 여성은 결혼을 하지 않아도 어른으로 인정받았다고 전해져요.
그런가 하면 평민 자녀들은 재미있는 형태로 나름의 성인식을 치렀어요. '들돌'이라고 부르는 무거운 돌을 들어서 힘을 자랑하고, 마을 어른들에게 '진서턱'이라는 술자리를 마련하여 신고식 겸 성년식을 치른 거예요. 이렇게 하면 그 뒤로 어른들과 동등한 노동력을 인정받아 같은 임금을 받고 일할 수 있었답니다.
기획·구성=김지연 기자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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