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장애인 정책]
어깨·등 굽은 이조판서 허조
왕실 제사 도중 계단에서 넘어지자 혼내는 대신 좁은 계단 탓하며 배려
시각장애인에게 직업 알선해주고 신하들 반대에도 관직 내리는 등 장애인 능력 펼칠 수 있게 도왔죠
얼마 전 교육부는 "장애 학생을 위한 특수학교가 들어서도 인근 지역 집값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어요. 그간 특수학교 설립이 추진될 때마다 일부 주민들이 "집값·땅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반대했는데, 실제로 조사를 해보니 특수학교와 집값·땅값 사이에는 별다른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죠. 이번 조사를 계기로 잘못된 편견에 기대어 장애 학생을 위한 시설을 반대하는 일은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장애인을 향한 잘못된 편견과 멸시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듯합니다. 하지만 장애인을 배려하고 도우려고 했던 분도 많이 있었어요. 한글 창제를 비롯해 수많은 업적을 남긴 세종대왕도 장애인을 배려하고 아꼈던 분이었습니다.
◇넘어진 허조를 걱정한 세종
임금이 된 지 7년째인 1425년 1월, 세종은 종묘에서 신하들을 이끌고 왕실의 조상께 큰 제사를 올리는 춘향대제를 지내고 있었습니다. 세종이 제사상에 비단을 바친 다음 술잔을 올리는 차례였는데, 세종에게 술잔을 건네고 물러나던 이조판서 허조가 발을 잘못 디뎠는지 그만 계단에서 굴러떨어지고 말았어요. 경건하게 치러져야 할 제사에서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이죠. 당황한 허조는 다시 일어나 세종에게 빈 잔을 받기 위해 계단 위로 올라갔습니다. 허조가 세종에게 넘어진 실수에 대해 사죄하자 세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그림=정서용
"이조판서는 다치지 않았느냐?"
다른 대신들은 실수를 저지른 이조판서가 크게 혼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는데, 세종은 오히려 허조가 다치지 않았는지 걱정하였습니다. 그러고는 "계단이 좁아 그런 것 같으니 계단을 넓히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렸어요. 허조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것을 계단이 좁은 탓으로 돌려 신하의 실수를 감싸준 것이지요.
◇장애인을 편견 없이 대하고 배려하다
사실 허조가 계단에서 넘어진 건 그가 장애가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허조는 어려서부터 몸이 너무 마르고 얼굴빛이 창백했고, 어깨와 등이 굽은 장애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학업에 전념하여 고려 말 문과에 급제했고, 태종 때는 예조에서 꼼꼼하게 일을 처리해 태종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았어요.
세종 때는 10년 가까이 이조판서를 지내며 천거된 인재를 철저히 검증하고 선발된 인재는 열심히 일하고 배울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훗날에는 우의정과 좌의정에 올라 재상으로서 나랏일을 보았고요. 후세 사람들도 허조를 '장애인 정승'이 아닌 '명재상'으로 부르며 존경하였습니다.
세종은 신하들의 반대가 있어도 장애인을 편견 없이 대하고 능력에 맞는 벼슬을 내렸습니다. 태종 때부터 왕실의 길흉화복을 점치고 혼례에 관한 일을 맡아본 지화라는 시각장애인이 있었는데, 세종은 "지화가 자기 일을 열심히 한다"며 벼슬을 내리려 했어요. 그러자 여러 신하가 "시각장애인이 실무적인 일을 감당하기 어려우니 벼슬을 내리지 말고 쌀을 주라"고 반대하였어요. 하지만 세종은 이를 물리치고 지화에게 관직을 내려주었습니다.
조선에서는 장애인이 관직에 오르거나 재능을 펼쳤던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광해군 때 좌의정을 지낸 심희수는 지체장애가 있었고, 영조 때 형조판서를 지낸 이덕수는 청각장애가 있었지요. 조선 후기 이름난 시인인 김성침과 그의 부인 홍씨는 시각장애인이었고, 관현악기를 다룬 시각장애인 김복산과 김운란도 가야금과 아쟁의 대가로 명성을 떨쳤어요.
◇조선·고려의 장애인 복지 정책
조선 때 장애인들이 능력을 펼칠 수 있었던 건 장애인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세종 이후로 큰 장애가 있는 사람은 조세와 부역, 잡역 등을 면제받았습니다. 시각장애인은 나라에서 점복(점치는 일)이나 독경(불경을 외우는 일), 악사 같은 일을 할 수 있게 알선해 적극적으로 사회 활동을 하고 생계를 이어가도록 도왔고요.
태종 때는 '명통시'라는 시각장애인 단체가 있었는데, 이들은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모여 경전을 읽으며 나라의 안녕을 빌고 가뭄이 들면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며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지요. 이에 조선 조정은 명통시에 쌀과 베 등을 지원하여 이들의 활동을 도왔답니다.
고려시대에 장애인에 관한 기록은 그리 많지 않지만, 몇몇 기록을 통해 고려 때도 조선시대처럼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지원과 배려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고려사'에는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이나 고아, 늙고 자식이 없는 사람, 위독한 병에 걸린 사람, 장애인을 위해 나라에서 향연을 베풀고 물품을 내려주었으며 지방 관청도 이를 본받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조정에서 "흉년이 들었더라도 외롭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과 장애인에게는 우선적으로 관가에서 양식과 필요한 물품을 마땅히 내주어 굶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리거나 "여든이 넘은 노인 병자(장애인)에게는 제각기 돌봐줄 시정(활동 보조인)을 한 사람씩 보내라"라고 명했던 기록도 있어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기획·구성=배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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