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뉴스 속의 한국사] 정치, 수학, 과학 통달한 조선의 '융합형 인재'

bindol 2021. 11. 7. 05:16

[영의정 최석정]

영의정 8번 한 조선 후기 명재상
앞선 문물 받아들이고 학문에 관심, 훈민정음 원리 풀고 수학책 집필도
주산, 분수, 사칙연산 등 개념 설명
'직교라틴방진'은 세계 최초 발견…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올랐어요

주산·바둑·한자 등 과거에 유행했던 교육이 요즘 다시 인기를 끌고 있어요. 학부모들 사이 "주산과 바둑이 아이들의 직관, 통찰력, 집중력, 판단력을 높이는 데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났다고 해요. 주산(珠算)은 주판이라는 셈틀을 통해 수를 계산하는 방법이죠. 조선 후기의 문신 최석정(1646~1715)은 '구수략(九數略)'이란 수학책을 집필하고 주산에 대해 언급했어요. 오늘은 수학은 물론 천문학, 언어학, 행정 등에 능했던 조선의 '만능 인재' 최석정에 대해 알아볼게요.

◇영의정에 8번이나 오른 최석정

"최석정은 (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최명길의 손자로 총명함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났다. 어려서 남구만과 박세채를 따라 배웠는데, 이치를 분별하여 깨달아 12세에 이미 '주역'에 통달해 손으로 그려서 도면을 만드니, 세상에서 신동이라 일컬었다. 산수와 글자를 연구하는 학문을 신묘하게 깨우쳤다."

이 글은 노론이 주도해 쓴 숙종실록을 다시 소론의 입장에서 기록한 '숙종실록보궐정오'에 기록된 내용이에요. 이를 통해 최석정이 수학에 뛰어났으며 소론 측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최석정은 병자호란이 일어난 지 약 10년 뒤인 1646년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그의 할아버지 최명길(1586~1647)은 병자호란 당시 조선이 청(淸)과 강화를 맺어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재상이었죠.

최석정은 25세인 1671년에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고, 여러 벼슬을 거쳐 숙종 때인 1701년에 최고 벼슬 영의정에 올랐어요. 영의정은 오늘날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자리예요. 그는 장희빈의 처형을 반대하다 유배된 적도 있고, 소론의 대표적 인물로 당쟁에 휘말려 어려움과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일곱 번이나 더 영의정에 임명됐지요. 온건하고 합리적인 정치 활동을 펼쳤고, 여러 방면에서 학문적 능력이 뛰어났던 덕분이에요.

◇조선의 수학책 '구수략'을 쓰다

최석정은 1686년 중국 출장길에서 서양 학문을 접했다고 해요. 이후 '천학초함(天學初函)'과 '동문산지(同文算指)' 등의 서적을 조선에 소개하고 서구의 신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앞장섰죠. 숙종 때인 1700년 최석정은 '구수략'을 발간했어요. 구수략은 동양의 고전 철학을 바탕으로 당시 수학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에요. 여기에 주판과 관련된 기록이 나와요. 최석정은 '구수략'에 주판을 그려 놓고 "주판 위에 있는 2개의 알[珠]은 하나가 5씩이고, 밑에 있는 알은 하나가 1씩이니 1에서 5까지 있다"고 설명했죠. 주판이 널리 보급되기 전 사람들은 삼국시대부터 써온 '산목(산가지)'을 수를 세는 도구로 사용했어요. 이에 대해 구수략에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 있어요. "고대에는 대나무로 산대를 만들었으며, 그 지름은 1푼, 길이는 6촌으로 정했다. (중략) 옛 제도는 이미 쓰이지 않고 지금은 산대의 단면이 원 모양이 아니고 세모꼴이다."

 그림=정서용

구수략에는 이 외에도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어요. 수의 기원과 근본 설명, 사칙연산(덧셈·뺄셈·곱셈·나눗셈)을 하기 위한 산대의 모양과 산대를 늘어놓는 방법, 분수를 나타내는 방법과 계산 등이 잘 정리돼 있어요. 또한 세계 최초로 9차 '직교라틴방진'이란 것이 실렸어요. 직교라틴방진이란 가로·세로 9칸씩 81개의 칸에 (1, 1)부터 (9, 9)까지 81가지 숫자 쌍이 중복 없이 하나씩 들어가는 배열이에요. 중국의 수학책에도 없는 독창적인 것이었죠.

과거 직교라틴방진은 스위스의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1707~1783)가 최초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카이스트 한상근 교수와 연세대 송홍엽 교수 등의 연구로 최석정이 60여 년이나 앞섰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고 해요.

최석정은 구수략뿐 아니라 훈민정음의 원리를 그림과 함께 풀이한 '경세훈민정음도설'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고, 천문을 관측하는 기구인 혼천의(渾天儀)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박율이 쓴 '산학원본'이라는 수학책이 발행될 때 서문을 쓰는 등 수학에 깊은 관심을 나타내기도 했죠.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최석정은 2013년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제정한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어요. 여덟 번이나 영의정에 오른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최석정은 조선의 진정한 '융합형 인재'였던 것 같습니다.

☞마방진과 라틴방진

마방진은 정사각형에 1부터 차례로 숫자를 겹치지 않게 채워 넣었을 때 가로, 세로, 대각선 위에 놓인 세 수의 합이 모두 같아지는 수의 표예요. ‘마(魔)’ 자는 마술이나 요술을, ‘방(方)’ 자는 사각형을, ‘진(陣)’ 자는 줄을 지어 늘어선다는 뜻이죠. 즉 마방진은 “마술적인 성질을 가진 정사각형 숫자 배열”을 말해요. 라틴방진 역시 유사한데, 정사각형 안에 서로 다른 숫자나 기호가 각 행과 열에 한 번씩만 들어가도록 배열한 것이죠. 마방진은 고대 중국, 라틴방진은 서양에서 유래했어요.







 

지호진·어린이 역사 저술가 기획·구성=박승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