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뉴스 속의 한국사] 조선의 지도 제작 기술, 세계 최고 수준이었어요

bindol 2021. 11. 7. 05:25

[지도 제작]

삼국시대부터 지도 제작 기술 발달
고구려 벽화, 요동 일대 상세 묘사
조선 세계지도엔 아프리카도 나와

거리 재는 수레 '기리고거' 동원해 조선 전국 누비며 동국지도 완성
훗날 '대동여지도'의 발판됐어요

131년 전인 1886년에 일본이 독도를 자기 영토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구체적 자료가 발견됐어요.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당시 일본의 지리 교과서 '신찬지지(新撰地誌)'의 아시아 지도에 울릉도와 독도가 그려져 있지 않은 것을 밝혀냈죠. 이 지도엔 일본의 국경선이 붉은색으로 그어져 있는데 울릉도와 독도 해역은 일본 영토에서 제외돼 있어요.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일본의 주장을 반박할 좋은 자료인 셈이죠.

지도는 옛날부터 영토와 주권의 범위를 알려주는 도구로 통치 목적과 군사작전에 중요하게 이용됐어요. 우리 조상도 무척 오래전부터 지도를 만들었는데 과연 언제부터 지도를 그렸고, 제작 수준은 어땠을까요?

◇삼국 시대부터 활용된 지도

1953년 평안남도 순천군 용봉리에서 고구려 시대 무덤이 발굴됐어요. 다른 고구려 벽화 무덤들처럼 무덤 안 여러 방의 벽과 천장에 여러 그림이나 무늬가 그려져 있었는데, 한 성(城)의 모양과 성 안에 있는 건물들을 그린 그림도 있었어요. 성 그림 속에는 '요동성(遼東城)'이라고 쓴 글씨가 새겨져 있었죠. 그래서 이 무덤을 요동성 모습이 그려져 있는 무덤이라 하여 '요동성총'이라고 불러요.

 /그림=정서용

요동성은 만주 요양 부근에 있는 고구려의 성으로 중국 수나라의 1·2차 침략에도 함락되지 않았던 난공불락 요새였어요. 요동성을 그린 그림에는 성 주변 산이나 강, 요동성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다른 조그만 성이 그려져 있고, 성의 여러 입구와 성 안의 건물 모양과 위치 등도 표시돼 있어 성곽 지도의 역할을 했어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지도로 보고 있죠.

또 '삼국사기' 중 고구려본기에는 영류왕 11년(서기 628년) 가을 9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며 봉역도(封域圖)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는데 봉역도는 한 나라 전체를 그린 지도를 말해요. '삼국사기' 문무왕조(671년·문무왕 11년)에 '신라와 백제 간의 경계를 지도에 의하여 살펴보았다'는 기록도 있어요. 이를 통해 삼국 시대 또는 그 이전부터 우리 조상이 지도를 제작했고 이용했음을 알 수 있어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

조선 초기 태종 때인 1402년에는 국가적 사업으로 매우 특별한 지도가 제작됐어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라는 가로 164㎝, 세로 148㎝ 대형 세계지도죠. 의정부의 모든 실무를 담당하는 검상이라는 관직(정5품)에 있던 이희가 좌의정 김사형, 우의정 이무 등과 함께 완성한 지도예요. 중국과 조선, 일본의 최신 지도를 자료로 삼고, 다양한 자료를 수집해 동남아시아와 인도, 아라비아, 유럽 그리고 아프리카까지 그려넣었어요. 현재까지 전하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이며, 당시 그려진 세계지도 가운데 가장 우수한 지도로 평가받고 있어요. 1992년 미국에서 열린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 500주년 기념 지도 전시회에 전시됐는데 서양의 지도역사학자들이 "당시에 이런 지도가 있었다니…"라며 크게 놀랐다고 해요.

이희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만들기 몇 달 전에 '팔도도'라는 조선의 전국 지도를 만들어 태종에게 바쳤는데 이 지도가 조선 최초의 지도였어요. 안타깝게도 원본이나 사본이 남아 있지 않아 그 내용을 알 수 없으나 몇 달 뒤 그가 만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로 팔도도의 우수성을 짐작해볼 수 있죠.

◇지도 제작술이 발달한 조선

세종대왕은 1436년 신하 정척을 불러 "함길도와 평안도 등을 자세히 살펴서 산천 형세를 그려오라"고 명령했어요. 앞서 1433년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에 4군 6진을 설치하며 북방 영토를 개척한 세종은 군사적으로 이 지역에 대해 자세하고 정확한 지도 제작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죠. 정척은 풍수지리를 담당하는 '상지관'과 그림 그리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화공들을 데리고 함길도와 평안도 지역을 두루 살폈어요. 그렇게 1451년 양계 지방 지도를 완성했죠.

세종 때 집현전에서 활동했던 양성지는 충청도·경상도·전라도의 산천 형세를 조사했어요. 양성지는 조선 전도의 지도를 만들라는 세조의 명을 받고 정척과 힘을 합쳐 1463년 '동국지도(東國地圖)'를 완성했어요. 양성지와 정척이 만든 동국지도는 실지 답사로 만든 지도로 조선 전기 최고의 지도로 꼽혀요. 지도 제작에 '기리고거'라는 거리 측량 기구를 사용했다고 해요. 해안이나 산간 지방처럼 수레를 사용하기 힘든 지역에서는 간승(일정한 거리마다 표시를 해둔 노끈)이나 대나무 자인 죽척을 사용했어요.

이렇게 제작된 조선 전기의 지도들이 바탕이 돼 '조선방역도', 정상기가 제작한 '동국지도', '도성도' 등이 훗날 제작됐고 우리 역사상 최고의 지도로 평가받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로 이어지게 됐답니다.

[기리고거는 어떤 기구일까?]

기리고거(記里鼓車)는 어떤 곳에서 다른 곳까지 이르는 거리를 '리(里)' 단위로 세는 수레처럼 생긴 기구예요. 417년에 중국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전해지며 조선에서는 세종 때 사용한 것으로 기록돼 있어요. 문헌에 따르면 수레는 위아래 2층으로 구성돼 있고 각 층에 나무인형(木人)과 북 또는 징이 내장돼 있어, 수레가 1리(里)에 이르면 아래층의 나무인형이 북을 치고, 10리에 이르면 위층의 나무 인형이 징을 쳐서 거리를 알렸다고 해요. 1441년 세종은 왕비와 함께 말이 끄는 기리고거를 타고 온양에 가면서 거리를 측정했어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저술가 기획·구성=박승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