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뉴스 속의 한국사] 1500년 전 무덤에서 달걀이 나온 까닭은?

bindol 2021. 11. 8. 04:32

[천마총의 달걀]

'하늘 나는 말' 그림 발굴된 천마총
신라 금관 등 1만점 넘는 유물 틈에 5~6세기에 묻은 달걀 20개 발견돼
역사학자들 "알에서 다시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 담아 함께 묻어준 듯"

'살충제 달걀 파동'으로 우리 사회가 최근 몸살을 겪었어요. 안심하고 달걀을 먹어도 되는지 아직도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있죠. 우리 식탁에서 널리 사랑받는 달걀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이에요. 지금으로부터 44년 전에도 달걀이 큰 화제가 된 적이 있어요. 당시 달걀은 1500년쯤 된 어느 고분(古墳·오래된 무덤)에서 무더기로 출토됐었죠.

◇'경주 155호 고분'의 재발견

1973년 경주시 대릉원 155호 고분을 발굴 중이던 고고학자들은 말문을 잃고 감탄사만 연발했어요.

"와! 이 금관 좀 봐." "유리컵도 있네."

봉토가 허물어진 초라한 고분에서 상상하지도 못했던 유물들이 대량 발굴됐어요. 화려한 금관과 금제 귀걸이, 유리컵 등 1만점이 넘는 유물들이 출토됐는데 금관은 그때까지 발굴된 신라시대 금관 가운데 금판이 가장 두껍고, 금의 성분도 우수한 것이었어요.

계속된 발굴 작업 중 고고학자들이 놀랄 만한 유물이 또 나타났어요. 말을 탄 사람의 옷에 흙이 튀지 않도록 말 안장 양쪽에 늘어뜨리는 가리개 장니(障泥)에 하늘을 나는 말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어요. 자작나무 껍데기를 여러 겹으로 겹쳐 누볐는데 그 위에 하늘을 나는 백마를 능숙한 솜씨로 멋지게 그려 넣었어요. 이는 '천마도 장니'로, 현재까지 전해진 신라의 그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죠. 사람들은 천마도 장니를 발견하기 전까지 이 고분을 '경주 황남동 155호 고분'으로 불렀는데 천마도 장니가 발견된 뒤 '천마총'이라고 부르게 됐어요. 천마총에서는 장신구류 8766점, 무기류 1234점, 마구류 504점, 그릇류 226점, 기타 796점으로 모두 1만15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됐어요. 천마총은 그야말로 신라의 보물창고였던 셈이죠.

◇1500년 전 달걀이 발굴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마총에서는 또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유물이 발굴됐는데 바로 달걀이었어요. 2개의 토기에 20여 개 분량쯤 되는 달걀 껍데기가 썩지 않은 채 들어있었는데 그중 3개는 깨지지 않고 온전한 모습 그대로였어요. 그때까지 고분에서 원래의 모습대로 달걀이 출토된 것은 세계적으로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고고학자들은 물론 많은 사람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어요.

역사학자들은 천마총이 세워진 시기는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초쯤이며, 신라 제21대 소지 마립간(재위 479~500년)이나 신라 제22대 지증왕(재위 500~514년)의 무덤으로 짐작해요. 그러니까 천마총에서 발견된 달걀은 약 1500년 전의 것이란 얘기죠.

왕의 무덤이니 금관이나 금제 장식품 등 여러 화려한 유물이 묻혀 있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달걀은 왜 묻혀 있었을까요? 역사학자들은 달걀을 죽어서 다른 세상으로 갈 때 챙겨 먹으라고 묻어둔 것이 아닐까, 또는 달걀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재생의 의미로 함께 매장하는 '껴묻거리'로 짐작해요. 껴묻거리는 죽은 사람과 함께 무덤에 묻는 부장품을 뜻해요. 알 속에서 새 생명이 탄생하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알에서 태어난 시조 임금들

천마총 달걀과 삼국사기·삼국유사에 기록된 김알지 탄생 설화 등을 볼 때, 삼국시대 이전부터 닭을 사육한 것으로 짐작해요. 삼한시대의 패총에서도 닭 뼈가 출토됐어요. 삼국시대의 무덤에서 달걀과 닭 뼈가 출토되는 것을 보면 옛날에 닭이나 달걀이 흔한 먹을거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어요. 귀하고 의미가 담긴 음식으로 생각했으니 무덤에 껴묻거리로 넣어둔 것이죠.

김알지 탄생 설화는 경주의 서쪽 시림이라는 숲에서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곳을 둘러보니 황금빛 상자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상자에서 빛이 나오며 흰 닭이 나무 밑에서 울고 있었는데 탈해왕이 직접 가서 상자를 열어 보자 용모가 수려한 사내아이가 나왔다는 이야기예요. 이때부터 시림을 '계림(鷄林)'이라 불렀고, 탈해왕은 이 아이를 거둬 길렀는데 금궤에서 나왔다고 해서 성을 '김'씨로 했어요. 아이는 성장하면서 총명하고 지략이 뛰어나 '알지'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해요. 김알지가 경주 김씨의 시조가 됐고 그의 후손이 신라 13대 미추왕이 되었지요.

그런가 하면 우리 역사에서 고대국가를 세운 시조들의 탄생 신화 중 인물이 알에서 태어났다는 난생설화가 여럿 있는데요. 알을 신비롭거나 신성한 것으로 여겼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어요. 그래서 계란을 귀히 여겼는지도 모르지요.

☞난생설화는 왜 생겨났을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보면 고구려의 시조 동명왕 주몽은 하백의 딸 유화가 낳은 알에서 태어났으며,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는 하늘에서 내려온 자줏빛 알에서 태어났다고 해요. 금관가야의 왕이자 김해 김씨의 시조인 수로왕도 구지봉에 내려온 황금알에서 태어났고요. 이처럼 건국신화 중에 난생설화가 많은 것은 옛날 사람들이 알을 신성하게 여겼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알을 태양 또는 하늘을 상징한다고 보아 알에서 태어난 사람은 하늘이 내려준 특별한 존재였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죠. 또 알을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겼거나 농사에 가장 중요한 씨앗을 상징한다는 의견도 있어요.

지호진·어린이 역사 저술가 기획·구성=박승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