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병역 기피]
16~60세 모든 남성 군역 의무 가져… 승려·학생·노비 등은 면제 받았죠
군대 안 가려 승려 신분증 얻어내고 50세까지 학생으로 살기도 했대요
최근 정부가 연예인·운동선수·고위 공직자·고소득자 자녀 등이 군대에 갔는지, 가지 않았다면 왜 가지 않았는지를 별도로 따져 점검하는 위원회를 만들겠다고 발표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만 18세 이상 남성이라면 누구나 군대에 입대해야 하는데요. 일부 연예인 등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입대를 미루거나 아예 가지 않는 경우가 생기자 이를 막겠다고 나선 거죠. 국방부에 따르면 군대에 가야 하는 의무를 피하기 위한 편법은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어요. 최근엔 눈꺼풀 위에 멀미 예방약인 키미테를 붙여 고의로 시력장애를 일으키는 사람들까지 나왔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런 못된 방법을 동원해 군대에 가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조선시대에도 있었다는 걸 알고 있나요?
◇조선시대에도 병역 기피가?
'병역(兵役)'은 국민으로서 군대에 가야 하는 의무를 말해요. 옛날에는 이를 '군역(軍役)'이라 불렀는데, 16~60세의 건강한 남성이라면 대부분 군대에 가거나 국가에서 하라는 일을 해야 했어요. 우리 역사에서는 삼국시대부터 남자들이 군역을 졌다는 기록이 있고, 고려시대에는 16세부터 60세까지의 남자에게 군역을 지웠답니다. 단 군역에서 제외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관원, 공신(功臣·나라를 위해 특별한 공을 세운 관리)의 자손, 천민, 노비 등이었죠.
▲ /그림=정서용
조선시대에도 16~60세의 모든 양인(良人) 남성은 군역을 져야 했는데 이를 '양인 개병제'라고 불러요. 양인은 조선 초기 노비를 비롯해 사회적으로 천시를 받았던 계층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이르는 말이고, 개병(皆兵)은 법에 따라 모두가 병역의 의무를 지는 것을 말해요. 평소엔 농사를 짓다 순번이 되면 매년 1~2개월씩 복무해야 했죠.
조선 초기에는 양반들도 군역을 져야 했는데 단 현직 관리와 향리, 성균관·향교 학생들은 제외됐답니다. 또 왕실 종친이나 외척, 공신이나 고급 관리의 자제들은 고급 특수군에 편입됐죠. 그 밖에 지체장애인, 70세 이상의 부모를 모시는 외아들, 승려 도첩(정부가 발행하는 승려 신분증)을 받은 사람 등도 군역을 면제받았어요.
이렇다 보니 병역을 피하기 위해 관리들과 짜고 도첩을 얻어내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성종 때인 1483년, 정부는 궁궐 보수 공사를 할 때 동원됐던 무자격 승려 2000명에게 도첩을 내주었죠. 이것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자 1492년 성종은 군역을 확대하기 위해 도첩제를 폐지하기로 합니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자 한 사간원 관원이 이렇게 상소를 올렸다고 해요.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처자(아내)가 없는 중은 100명 중 한둘입니다. 나머지는 놀고먹으면서 병역을 피하는 자들입니다." 그 뒤로도 도첩제의 설치와 폐지가 거듭되면서 도첩을 얻어내 병역을 기피하는 경우가 이어졌어요.
학생 신분을 얻어 군역을 피하려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40~50대 나이인데도 병역을 피하려고 향교 학생으로 등록하는 사례가 늘자 1462년 세조는 "나이가 마흔 살 된 늙은 학생들은 충군(充軍·죄 지은 자를 군대에 보내는 것)에 속하도록 하라"고 명령을 내렸답니다.
◇"군역의 불평등함… 나라 망할 것"
아예 신분을 바꿔 군대에 가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족보를 사서 왕족이나 공신의 자손으로 위장해 군역을 면제받기도 했고, 뇌물을 주거나 권력을 이용해 담당 관리·관청을 압박해 군역을 피하기도 했죠. 또 돈이 많은 사람들은 군역을 대신해 줄 사람을 돈으로 사서 자신은 군역에서 빠지기도 했는데, 이렇게 남을 대신해서 군인이 된 사람을 대립군(代立軍)이라고 불렀어요.
이렇게 군역을 기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중종 때인 1541년 '군적수포제'가 정식으로 도입됩니다. 양인이 1년에 군포(베) 2필을 나라에 바치면 군역을 면제해주는 것으로, 조선시대 군역제도가 모병제로 바뀌는 계기가 되죠.
양인과 천인으로 나누어졌던 신분제도는 16세기 이후 양반·중인·평민·천인 등 4개 계층으로 세분화됩니다. 인조 때인 1627년부터 양반은 아예 군역을 지지 않아도 되게 됐죠. 이렇게 군역에서 빠지는 사람이 늘자 1659년(효종 10년) 병조참지 유계가 임금에게 다음과 같이 아뢰었어요.
"예전에는 사대부 자제로서 성인이 된 남자는 신분의 귀천을 막론하고 중앙군에 소속됐기 때문에 백성의 뜻이 안정되고 군역의 의무가 평등했습니다. 그러다 나라의 기강이 해이해져…(중략) 놀기만 하고 게으른 자가 10명 가운데 8~9명을 차지하고 간신히 남아있는 선량한 백성에게만 유독 군역을 부담시키고 있습니다. 군역의 불평등함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 무슨 방법으로 백성들 마음을 화합시켜 나라가 망하지 않게 할 수 있겠습니까."
[신분 상승 포기한 천민]
성종 때인 1473년 손장수라는 인물은 원래 천민이었지만 '이시애의 난'(1467년·세조 집권 정책에 반대해 함경도 호족 이시애가 일으킨 반란) 때 진압군으로 참여해 공을 세워 양인이 됐어요. 하지만 손장수는 '환천(還賤), 즉 다시 천민이 되겠다'는 애절한 사연을 담은 상소문을 나라에 제출했어요. "저는 너무 가난하고 미약해서 군역을 감당하기엔 합당하지 않습니다. 제발 성균관의 노비로 살게 해주십시오." 성종은 "그러라"고 했답니다. 양인이 되면 매년 일정 기간 군대에 가야하는데, 그 기간 동안 생계 유지가 어려워질까 우려한 거죠.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저술가 기획·구성=박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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