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뉴스 속의 한국사] 일본식 개명·한글 사용 금지… 탄압에도 '우리말' 지켰죠

bindol 2021. 11. 8. 04:40

[한글과 조선어학회]

우리말 연구 위해 모인 '조선어학회', 일제 민족 말살정책에도 굴하지 않아
'독립운동단체'로 몰려 옥살이 하기도… 우리말사전 편찬·한글날도 제정했죠

오늘은 길었던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이자 훈민정음 반포 571돌을 기념하는 한글날이에요. 1443년 우리글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은 1446년 이를 백성들에게 널리 알려 배우게 했어요. 훈민정음은 1913년 무렵 국어학자인 주시경 선생에 의해 '한 민족의 글' 또는 '큰 글'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인 '한글'로 불리게 되었답니다.

한글날은 일제강점기 시절이던 1926년 처음 제정됐어요. 훈민정음 반포 480년을 기념해 '가갸날'이란 이름으로 정해졌다가 1928년 '한글날'로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어요. 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일제시대에 한글날을 제정했던 걸까요?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

1910년 8월,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삼은 일제는 일본 헌병과 경찰을 한국 땅 곳곳에 배치해 한국인들을 무력으로 억누르는 '무단통치'를 실시했어요. 1920년대에는 한국 전통과 문화를 존중해주는 척하며 한국인을 다스리는 '문화통치'로 한반도를 지배했죠.

그러나 1930년대가 되면서 분위기가 바뀝니다. 미국·유럽에서 경제 대공황(제1차 세계대전 직후 과잉 생산과 실업자 증가 등으로 불거진 불경기)이 시작되자 일본 역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 거죠. 일제는 전쟁을 통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1931년 중국 만주를 침략하는 만주사변(滿洲事變)을 일으켰어요. 더 나아가 1937년엔 중국을 상대로 전쟁(중일전쟁)을 일으켰죠. 그러면서 한반도를 자기들 전쟁에 필요한 인력이나 물자를 공급하는 병참기지로 삼고, 한편으로는 한민족의 전통과 문화를 뭉개 없애려는 정책을 실시했어요. 이를 '민족문화 말살정책'이라고 불러요.

일제는 한국인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하는 창씨개명(創氏改名·일본식 성을 새로 만드는 것)을 실시했고 나라 곳곳에 일본의 조상신과 일본 황실을 섬기는 신사를 만들어 참배를 강요했어요. 학교에서도 한국 역사 대신 일본 역사를 배우도록 했고 한국어 교육을 완전히 없애고 일본어만 사용하게 했죠.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한글로 발간되는 신문과 한글로 된 잡지도 전부 발간하지 못하게 했어요.

그러나 국내에선 '조선어학회'라는 모임을 중심으로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키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졌죠.

◇한글 연구를 '내란죄'로 몰다

조선어학회는 주시경 선생 등을 중심으로 우리말과 우리글 연구와 보급을 위해 앞장섰던 민간 학술단체예요. 1908년 8월 '국어연구학회'라는 이름으로 창립됐다가 이후 '배달말글돋음', '한글모', '조선어연구회' 등을 거쳐 1931년 1월 '조선어학회'라는 이름으로 바꾸죠. 1926년엔 오늘날의 한글날인 '가갸날'을 제정했고, 잡지 '한글'을 만들고 '조선어 사전' 편찬을 위해 애썼어요. 장지영, 최현배, 이윤재, 이희승 등이 중심이 돼 활동했는데 '조선어학회 사건'이 일어나면서 조선어 사전 편찬 작업이 중단돼요.

 그림=정서용

조선어학회 사건은 1942년 일어난 작은 사건 하나가 빌미가 됐어요. 한 기차 안에서 함흥영생고등여학교 학생이던 박영옥이 친구들과 한국말을 쓰다가 조선인 경찰관에게 붙잡혀 조사를 받게 된 거죠.

"너는 조선어 사용 금지도 모르나? 어째서 한국말을 쓴 거야?" 박영옥을 윽박지르던 경찰관은 박영옥이 서울의 정태진이라는 인물로부터 교육 받았다는 것을 알게 돼요. 정태진이란 인물을 뒷조사한 결과 그가 서울에서 조선어 사전을 편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일본 경찰은 정태진을 잡아다 조선어학회라는 모임이 순수 학술 연구 모임이 아니라 민족 독립운동을 하는 단체라는 '거짓' 자백을 받아냈어요. 일제는 조선어학회와 관련된 학자들을 33명이나 붙잡아 혹독하게 고문하고 28명을 감옥에 가두었죠. 모진 고문과 고통스러운 감옥 생활 끝에 이윤재, 한징 등은 목숨을 잃었고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 정태진 등은 실형을 받아 감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이들에게 재판부는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은 조선민족정신을 유지하는 민족 운동의 형태"라며 내란죄(內亂罪·폭동 등에 의해 국가 존립과 헌법 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범죄)를 적용합니다.

이처럼 일제가 조작한 조선어학회 사건 이후 조선어학회는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가 1945년 광복 후 조직을 다시 정비해 활동을 시작해요. 초·중등 국어 교과서를 편찬했고, 세종중등국어교사 양성소를 설치해 한글 연구와 보급을 위해 힘썼어요. 1949년에는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고 '조선어 사전' 편찬 사업을 이어받아 1957년 6권으로 된 '큰사전'을 펴냈답니다.

☞왜 한글날은 10월 9일일까?

조선어학회는 한글날을 음력 9월 29일로 정했어요. ‘세종실록’에 세종 28년(1446년) 9월을 가리켜 ‘이달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지다’라고 기록돼 있었기 때문이에요.

한글날을 오늘날같이 양력 10월 9일로 확정한 건 1945년 광복이 되고 나서예요. 1940년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에 ‘9월 상한(上澣)에 정인지가 썼다’는 기록이 나왔기 때문이죠. ‘9월 상한’을 9월 상순의 끝날인 음력 9월 10일로 잡고, 이를 양력으로 환산한 날짜인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정한 거예요.


 

 

지호진·어린이 역사 저술가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