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뉴스 속의 한국사] 광개토대왕 "고구려는 천하의 중심… 독자 연호 쓰라"

bindol 2021. 11. 8. 04:41

[연호(年號)]

국가의 연도 셀 때 쓰는 이름 '연호' 왕이 된 해 등을 기준으로 계산해요
고구려 시작으로 신라·고려도 사용… 고종도 새 연호로 자주국 선포했죠

'영락', '건원', '천통', '수덕만세' '천수', '광무', '융희'…. 무슨 이름일까요? 모두 우리 역사를 이루었던 왕조에서 독자적으로 사용했던 연호(年號)를 일컫는 이름이에요. 연호란 왕이 다스리는 군주 국가에서 왕이 왕위에 오른 해같이 특정한 연도를 기준으로 햇수를 계산하는 것을 말한답니다.

현재 우리는 서양식 연호인 서력기원(西曆紀元), 즉 서기를 쓰고 있어요. 서기는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해를 기준으로 하지요. 그런데 얼마 전 단군학회 주최로 열린 개천절 기념 학술회의에서 "우리 고유의 전통 연호인 단기(檀紀)를 사용하자"는 주장이 나와 주목을 끌었답니다. 단기는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운 해를 기준으로 햇수를 따지는 방식이에요. 오늘은 연호에 대해 알아볼게요.

◇광개토대왕, 독자 연호를 쓰다

기원전 2세기, 중국 한나라 7대 임금인 무제(武帝)에게 유교학자 동중서가 다음과 같은 건의를 올렸어요.

"폐하, 연호를 사용해 우리나라가 세상의 중심이며 새 역사의 흐름이 시작됨을 널리 선포하소서!"

 /그림=정서용

"연호? 해에 이름을 붙이자는 말인가?"

"그러하옵니다. 폐하께서 즉위한 해부터 새로 이름을 정해 해를 세는 것입니다."

"좋은 생각이군. 지금부터 연호 제도를 실시하도록 하라."

한무제는 동중서의 의견을 받아들여 '기원을 세우다'는 뜻의 '건원(建元)'으로 연호를 지었답니다. 한무제는 이렇게 만든 연호를 정복 국가들에 강요하면서 주변 나라들을 중국 중심의 문화권으로 편입시키려 했어요. 우리나라도 중국 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391년 고구려 제19대 광개토대왕이 그 전까지 중국 연호를 따서 쓰던 것을 버리고 고구려가 만든 독자 연호를 만들어 사용하겠다고 밝혔어요. "천하의 중심이 우리 고구려인데 어찌 남의 나라 연호를 쓰겠는가? 이제부터 우리 연호를 정하여 쓰도록 하라!"

광개토대왕 때의 연호는 '영락(永樂)'으로, 백성들과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겠다는 뜻이에요. 광개토대왕이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 것은 흐트러진 나라 안의 기틀을 다시 세우고, 고구려를 자주적인 국가로 우뚝 서게 해 최고의 강대국으로 만들겠다는 당당한 선포였어요.

신라는 법흥왕 때인 536년 '건원(建元)'을 최초의 독자 연호로 사용했고, 그 후 진덕왕 때까지 신라만의 연호를 사용했어요. 개국(진흥왕), 대창(진흥왕), 건복(진평왕), 인평(선덕왕) 등 연호는 왕마다 달랐죠. 발해를 세운 대조영은 '천통(天統)'이란 독자 연호를 사용했고, 10세기 후(後)삼국 가운데 하나였던 고구려의 궁예는 '수덕만세' '정개' 등 네 개의 연호를 만들어 사용했답니다.

918년 고려를 세운 왕건도 '천수'라는 독자 연호를 만들었어요. 하지만 제4대 임금 광종 중반부터 중국 연호를 쓰기 시작합니다.

◇묘청과 김부식이 대립하다

"왕을 황제라 칭하고 독자적으로 연호를 정하여 사용함으로써 자주성을 높여야 합니다!"

고려 제17대 인종 때인 12세기 초반, 승려 묘청을 중심으로 서경(지금의 평양)에 기반을 두고 있던 세력이 이렇게 주장합니다. 그들은 나라의 도읍지도 개경(지금의 개성)에서 서경으로 옮기자고 주장했지요.

그러나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 등 개경에 기반을 두고 있던 신하와 귀족 세력들이 크게 반대를 하고 나섰어요. "작은 나라가 연호를 가지면 천하의 질서를 어지럽히게 됩니다." 김부식 세력은 서경으로 도읍지를 옮기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하며 "묘청과 그 무리들이 나라의 기틀을 어지럽히고 있으니 속히 그들을 처벌하라"고 했어요.

결국 인종이 서경으로 도읍지를 옮기는 것을 포기하자 묘청 등 서경 세력들이 반란을 일으켜 자기들만의 나라를 세우고(묘청의 난) 국호를 대위국(大爲國), 연호를 천개(天開)라고 짓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김부식이 이끄는 정부군에 의해 진압이 되고 말지요.

조선 왕조는 건국 때부터 스스로 중국 명나라의 제후국(명나라 황제로부터 명을 받고 통치하는 나라)의 일부로 처신하였기에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하자 1896년 고종은 건양(建陽)이라는 독자 연호를 정해 조선이 자주 국가임을 선포합니다. 이후 대한제국 때도 광무(光武)와 융희(隆熙)라는 연호를 잇따라 사용했지만, 1910년 일본 제국주의에 국권을 빼앗기며 독자 연호도 사라지고 말았어요.

1948년 대한민국도 독자 연호로 '단기'를 잠시 썼답니다.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연도(기원전 2333년)를 기준으로 한 거죠. 올해는 2017년이기 때문에 2333년을 더해 단기로는 4350년이에요. 1961년 서기를 공식적인 연호로 쓰기로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서기·단기를 함께 쓰고 있답니다.

한편 북한은 김일성의 출생연도인 1912년을 기준으로 하는 '주체연호'를 만들어 쓰고 있어요. 1912년이 '주체 1년'이기 때문에 올해는 '주체 107년'이 되죠.

[조선 중기 연호 '숭정기원'은?]

조선은 사대주의(事大主義) 사상에 따라 중국 명나라를 큰 나라로 섬겨왔어요. 명나라가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에 멸망한 뒤에도 조선 사대부들은 청나라를 오랑캐라 불렀고, 개인의 문집이나 비석 등 사사로운 기록에 명나라 연호인 '숭정기원(崇禎紀元)'을 계속 사용했어요. '숭정'은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의종 때 연호랍니다.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저술가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