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뉴스 속의 한국사] 비리 벼슬아치는 탄핵… 임금 잘못도 거침없이 지적했죠

bindol 2021. 11. 8. 04:45

[어사대와 사헌부]

고려 관리들 부정 감시하던'어사대'
'사헌부' 이름으로 조선까지 이어져

사헌부 관원 비리는 의금부가 조사… 수사권 분산해 권력 쏠림 방지했죠

최근 정부가 전직 대통령, 국회의원, 지자체장 등 고위 공직자의 비리를 수사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를 설치하겠다고 밝혔어요. 지금까지 고위 공직자의 비리는 경찰과 검찰이 수사할 수 있었는데, 대통령이 임명한 검사들로 구성한 '공수처'를 따로 만들어 고위 공직자 비리 의혹을 수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얘기예요. 정치권에선 검찰에 집중됐던 권한을 분산하는 효과가 있겠지만, 공수처가 또 다른 권력이 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함께 나오고 있답니다. 그렇다면 과거 우리 조상들은 고위 공직자들의 비리에 대해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자기 조직 우두머리도 탄핵

고려시대 중앙·지방 정치제도와 관직 체계를 기록한 '고려사' 등을 보면 '시정(時政·그 당시 정치나 행정)을 논하고 풍속을 바로잡으며 백관(모든 벼슬아치)의 부정과 비리를 규찰하고 탄핵하는 일'을 '어사대(御史臺)'라는 기관에서 맡아서 했다는 내용이 나와요. 이미 신라 진흥왕 때인 545년 이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기관이 있었는데, 당시 이름은 '사정부'였지요.


 /그림=정서용

고려의 '어사대'는 중국 당나라와 송나라의 정치제도를 참고해 우리 실정에 맞게 정비한 기관이랍니다. 어사대 관원들은 최고 중앙정치기구인 중서문하성에 소속된 낭사와 함께 대간(臺諫·간쟁을 담당하는 대관과 간관)이라 불렀어요. 이들은 왕의 잘못을 논하는 간쟁, 잘못된 왕명을 시행하지 않고 되돌려 보내는 봉박, 관리의 임명에 동의하는 서경 등의 임무를 담당했어요. 이러한 업무를 독립적으로 하기 위해 관원은 체포당하지 않고, 일터도 침범당하지 않을 특권이 주어졌지요.

어사대의 기능은 조선시대 '사헌부'라는 기관으로 이어져요. 조선시대 '경국대전'을 보면 사헌부는 정치의 옳고 그름을 둘러싼 언론·비판 활동, 백관에 대한 규찰, 풍속을 바로잡는 일,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해결해주는 일 등을 수행했어요. 오늘날로 보면 감사원과 검찰, 언론 역할까지 함께 했다고 볼 수 있지요.

조선 중종 때인 1507년, 사헌부에서 임금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아뢰었어요.

"대사헌 이점(李坫)이 연산군 시절 경상도 감사가 돼 흰 꿩을 임금에게 바쳐서 이를 사헌부와 사간원 관원들이 함께 따져 파직한 일이 있었습니다. 어찌 아첨한 자를 풍헌(風憲)의 장관으로 삼을 수가 있겠습니까? 갈기(탄핵)를 청합니다."

당시 이점의 관직은 사헌부 최고 우두머리인 대사헌이었지요. 사헌부 관원들은 자기 우두머리마저도 잘못을 따져 탄핵할 정도로 엄격하게 원칙을 지킨 거예요.

이렇게 권력에 맞서 임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연려실기술' 등 많은 책에서 "사헌부 관원이 정색하고 조정에 서면 모든 관료가 떨고 두려워했다" "사헌부 감찰이 왔다는 소리만 들려도 사람들이 다 몸을 움츠리고 무서워했다"고 전하고 있어요.

◇모든 벼슬아치가 두려워한 전중어사

사헌부 내에는 관리들 감찰만 따로 맡는 별도의 조직이 있었어요. 이를 '전중어사'(또는 전중시어사)라고 불렀답니다. 중앙 관청이나 지방에 파견돼 일의 진행이나 처리에 잘못이 있는지를 점검하는 임무를 맡았지요. 이를 수행하는 전중어사는 정6품으로 품계가 높지 않은 일개 관원이었지만, 집무실이 따로 있었을 만큼 업무를 존중 받았어요.

"전중어사는 임금에게 과실이 있을 때 노여움으로 거슬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장수와 재상에게 허물이 있으면 규탄해서 바로잡고, 왕의 인척(혼인으로 맺은 친척)으로 교만하고 간악하면 탄핵하며, 간사한 소인이 조정에 있으면 쫓아내고, 세도(정치적으로 큰 힘이 있는 사람)에 붙어 뇌물을 받거나 이권을 탐하면 물리쳐 모든 벼슬아치가 두려워했으니 그 직책이 어찌 중요하지 아니한가."

세조 때 학자 서거정이 쓴 책 '사헌부제명기'에 나오는 글이에요. 전중어사가 고위 공직자 비리도 수사하고 사실로 확인하면 처벌했던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런데 사헌부 관원이나 전중어사가 부패한 일을 저지르거나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면 어떻게 됐을까요? 만약 비리를 저지른 인물에 대한 신고가 사헌부에 접수됐는데 이를 사헌부가 덮으려 하거나 불공정하게 수사하면 그때는 조선시대 사법기관에 해당하는 의금부가 수사에 들어갔어요. 의금부 역시 공수처 같은 역할을 한 거예요.

조선시대에는 사건 종류에 따라 수사권이 형조, 사헌부, 의금부, 한성부 등 여러 기관으로 분리돼 있었어요. 그중 사헌부와 의금부가 핵심 수사기관이었는데, 사헌부가 주로 고위 공직자들의 비리를 수사하고 처벌했다면 의금부는 왕의 명령을 받아 특정한 관리나 양반의 죄를 심문했어요. 그러면서 두 기관이 서로 견제를 하도록 한 것이지요. 어느 한쪽으로 권력이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한 우리 조상들의 지혜였답니다.


[삼사(三司)]

조선시대에는 정치·행정이 제대로 돌아가는지 견제하는 기능을 맡은 기관이 셋 있었어요. 이를 '삼사'라고 하는데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이었지요. 사헌부는 주로 관리들에 대한 감찰이나 인사에 관여했고, 사간원은 국왕에 대한 간쟁이나 정치·인사 문제 등을 비판하는 기능을 주로 맡았어요. 홍문관은 왕의 학문적·정치적 자문에 응하면서 옳고 그름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답니다.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저술가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