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뉴스 속의 한국사] 사부학당·향교는 국립, 서원은 사립학교였어요

bindol 2021. 11. 8. 04:46

[조선의 중등학교]

국가가 등록금·운영비 전부 지원해 우등생은 시험 통해 성균관 보냈죠
지방 사립학교 '서원'도 영향력 커… 세력화로 문제 생기자 철폐하기도

내년부터 전국 중학교 약 1500곳에서 '자유학년제'를 운영한다고 해요. 자유학년제는 중학교에서 한 학기 운영하던 자유학기제를 1년으로 늘린 것인데요. 오전에는 국어·영어·수학 등 일반 교과목을 배우지만 오후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예체능이나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어요.

중학교는 초등학교 때 받은 교육을 바탕으로 깊이 있는 중등교육을 실시하는 교육기관을 말해요. 우리나라에선 의무교육이라 나라에서 학비를 부담하고 있지요. 그렇다면 여러분 또래 친구들은 과거 어디서 공부했을까요?

◇고려 말 세워진 오부학당

고려 말기인 1389년, 이성계(훗날 조선 1대 임금 태조)와 정몽주가 힘을 합해 창왕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공양왕(고려 마지막 왕)을 세웠어요. 정몽주는 이듬해인 1390년 문하시중이라는 최고 관직에 올랐답니다. 그는 기울어져 가는 고려의 운명을 되돌리고자 여러 정책을 추진했는데, 그중 중등 교육기관을 새롭게 정비하는 일도 포함돼 있었어요.

"주자학(성리학) 보급과 진흥을 통해 바람직한 인재들을 길러내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중앙에는 오부학당을 세우고, 지방에서는 향교를 정비해 교육의 진흥을 꾀하소서."

정몽주는 이렇게 왕에게 건의해 오부학당을 세웠어요. 오부학당은 고려 도읍지(수도)였던 개경(현재 북한 개성)의 동·서·중·남·북부 다섯 곳에 세운 학교로, 고려 제24대 원종 때인 1261년 설립한 동·서부학당을 확대한 것이에요. 공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향교(鄕校)와 달리 순수하게 주자학만 가르쳤지요. 앞서 1127년 제17대 인종이 각 군현에 세운 향교는 지방 인재에게 유학을 가르치던 관립 교육기관이랍니다.

 그림=정서용

오부학당과 향교 제도는 조선시대로 이어졌어요. 한양을 동·서·중·남·북 다섯 곳으로 나누고, 여기에 학교를 하나씩 설치한 것이에요. 이 중 북부학당은 제대로 설치하지 못했기에 최종적으로 사부학당으로만 운영했지요. 이 때문에 사부학당 또는 사학(四學)이라고 불렀어요.

학생 정원은 학당마다 100명 정도였고, 국가에서 학생 등록금을 부담했어요. 무상교육이었던 셈이지요. 국가에서는 학교에 학전(學田)이라는 토지와 노비를 내렸고 기숙사비 등 학교 운영 경비도 모두 부담했답니다. 입학 자격은 양반과 양인 자제로 8세 이상이면 됐고, 15세가 되면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 한해 '승보시'라는 시험을 치도록 하고 합격하면 성균관에 진학시켰지요.

향교 역시 국가에서 운영하는 지방 교육기관이었기에 학교 건물과 토지, 운영비 등을 국가에서 모두 지원했어요. 입학 자격은 양인이면 가능해서 평민도 많이 입학했어요.

◇지방의 사립학교 '서원'

1550년, 영의정 이기 등 대신들이 조선 명종 임금에게 아뢰었어요.

"풍기(현재 경북 영주) 백운동 서원은 풍기 군수였던 주세붕이 창립한 것인데, 현재 풍기 군수인 이황이 주세붕의 뜻을 훌륭히 여겨 편액(현판)과 서적·토지·노비를 하사해줄 것을 청한 바 있습니다. 이를 다 따라줄 수는 없으나 편액과 서적이라도 특명으로 내려보낸다면, 먼 곳의 유생(유학을 배우는 학생들)들이 반드시 감격해 더욱 열심히 공부할 것입니다."

서원(書院)은 조선 중기 이후 지방 양반들이 세운 사립 교육기관이었어요. 규모가 큰 곳은 고등 교육기관(대학교), 작은 곳은 중등 교육기관(중·고교) 역할을 했지요. 요청에 따라 명종은 백운동서원에 '이미 무너진 학문을 다시 이어 닦게 했다(旣廢之學 紹而修之)'는 뜻을 담은 '소수(紹修)'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고 쓴 편액을 내렸답니다. 이처럼 임금이 서원에 이름을 지어주고 편액을 내린 서원을 '사액(賜額)서원'이라 불러요.

향교에서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의 존경받는 유학자들에게 제사를 드렸지만, 서원에서는 우리나라 유학자들만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어요. 백운동서원 이후 안동 도산서원, 경주 옥산서원, 안동 병산서원 등 여러 사액서원이 생겨났고, 전국적으로 서원이 늘어나면서 임금이 공인한 사액서원만도 130여 곳에 이를 만큼 많아졌답니다.

서원은 처음에는 지방 인재 양성과 마을 질서 유지 등 여러 역할을 하며 발전을 거듭했어요. 하지만 붕당정치(관료들이 서로 파벌을 만들어 권력을 다투던 일)와 맞물려 일부 서원이 이익집단처럼 바뀌었고, 지방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백성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 것이에요. 조선 말기인 1860년대 후반 흥선대원군은 문제 많은 서원을 문 닫도록 하는 '서원 철폐령'을 내렸고, 결국 전국적으로 47곳만 남게 됐답니다.

☞옛날 초등 교육기관 '서당'

오늘날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서당은 개인이 운영하는 사립 교육기관이었어요. 마을 부잣집에서 훈장(교사)을 초빙해 아이들을 불러 모으거나,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돈을 내고 훈장을 초빙하거나, 훈장이 자기 집에 아이들을 불러 모으거나 하는 식으로 다양하게 운영했지요. 7~16세 남자아이라면 누구나 입학할 수 있었고, ‘천자문’을 시작으로 ‘동몽선습’ ‘명심보감’ ‘소학’ ‘사서오경’을 배웠어요.





지호진·어린이 역사 저술가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