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뉴스 속의 한국사] 淸 인질로 끌려갔던 소현세자, 성경·예수상 가져왔어요

bindol 2021. 11. 8. 04:53

[우리나라 첫 천주교 신자]

병자호란 후 청나라 끌려간 세자, 獨 선교사 아담 샬 만나 천주교 접해
차별받던 백성들에게 전파된 '서학'… "하느님 앞에 모두 평등" 희망 줬어요

오늘은 크리스마스예요. 예수그리스도를 인류의 구세주라고 믿는 종교인 기독교, 즉 로마 가톨릭(천주교)과 개신교 등에서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명절이지요.

우리나라 개신교와 천주교인은 모두 1350만명에 달해 전체 인구(4900만명)의 4분의 1이 기독교를 믿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그렇다면 우리나라 역사에서 처음으로 예수를 믿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소현세자, 선교사를 만나다

1636년 병자호란을 일으킨 청나라는 이듬해 16대 임금 인조의 장남인 소현세자와 둘째 아들 봉림대군, 그리고 청나라와 끝까지 싸우자고 주장한 신하들을 인질로 끌고 갔어요. 소현세자는 그로부터 8년 만인 1645년에야 고국에 돌아왔는데, 아버지 인조는 그를 반갑게 대하지 않았어요.

"청나라 황제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 이 아비에게 청나라 물건을 가지고 와서 자랑하는 것이냐? 썩 물러가라!"

소현세자가 인조 앞에 나아가 청나라에서 가져온 서양 물건들을 보여주자, 인조가 소현세자에게 버럭 화를 낸 거예요. 소현세자는 청나라에 머물며 청나라 황제와 가깝게 지내고 때론 조선과 청나라 간 외교 사절 역할도 했는데, 인조는 소현세자의 등장으로 자기 왕권이 흔들릴까 불안했던 것이지요.

소현세자가 임금에게 보여주려던 서양 물건 중에는 중국에 머물고 있던 독일 예수회(가톨릭 남자 수도회) 선교사 아담 샬에게서 받은 선물이 있었어요. 서양 천문학 책과 수학 책, 지구의(地球儀·지구본), 천주교 관련 책과 예수 모습을 그린 그림(천주상) 등이었지요.

 그림=정서용

소현세자는 귀국하기 전 아담 샬을 만나 매우 가까워졌는데, 아담 샬은 천문학에 밝아 청나라에서 역법(曆法·천체의 주기적 운행을 시간 단위로 구분하는 방법)을 관장하는 관리로 일하고 있었어요. 소현세자는 아담 샬을 통해 자연스레 서학(西學), 즉 천주교에 대해 알고 배우게 됐답니다. 두 사람은 밤늦게까지 천문학과 천주교에 대해 이야기하며 친분을 쌓았다고 해요.

아담 샬의 회고록에는 소현세자가 "예수상을 보기만 해도 마음이 가라앉고 깨끗해지는 것 같다" "성경은 마음을 닦고 덕을 기르는 데 적합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자신에게 보냈다고 적혀 있지요. 또 고국에 돌아가 서양 문물과 서학을 알리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돼 있답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소현세자가 사실상 첫 천주교 신자라고 주장하기도 해요. 하지만 엄밀하게 '천주교 신자'는 종교적으로 세례를 받아야 하고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다는 신앙을 고백해야 하기 때문에 소현세자를 최초의 천주교인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사람도 많답니다.

◇"신 앞에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

우리나라에 예수 이야기가 처음 전해진 것은 천주교를 소개하는 책을 통해서였어요. 1603년 중국에서 활동 중이던 이탈리아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천주실의'를 펴냈는데요. 이 책은 유교·불교·도교적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유교 경전을 인용하면서 천주교 교리를 이해하도록 쓰여져 있었지요. 이를 1614년 조선의 유학자인 이수광이 '지봉유설(芝峯類說)'이라는 책을 통해 자세히 소개했는데, 이후 천주교는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연구 대상이 되며 우리나라에 널리 전파됐답니다.

당시 기독교가 앞세운 사상은 "하느님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이었어요. 이런 가르침은 양반으로부터 차별받고 있던 하층 백성, 가부장적 질서에 고통받던 여성에게 큰 희망을 주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천주교인들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는 데다, 신분제 질서에 반하는 평등 사상을 전파할 수 있다는 이유로 모진 박해를 받기 시작했어요. 서학이 조선 사회의 유교적 근본 질서를 무너뜨릴 가능성이 있다고 본 거예요.

우리나라 천주교는 1783년 청나라에 갔다가 예수회의 그라몽 신부에게 영세를 받고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받은 이승훈을 한국인 첫 천주교도로 보고 있답니다. 그는 청나라에서 천주교 교리 서적 수십 종과 십자가상, 묵주 등을 가지고 귀국해 이벽·정약종 등에게 세례를 주었고, 당시 역관이었던 김범우의 집을 신앙 집회소로 정해 정기적 신앙 모임을 열었어요. 그러나 1801년 신유박해(순조 1년 천주교도를 박해한 사건) 때 체포돼 서울 서대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당했지요.

우리나라 첫 개신교 신자는 평안북도 의주 출신 김진기·이성하·이응찬·백홍준 등 네 젊은이예요. 이들은 중국 만주의 한 장터를 찾았다가 영국 스코틀랜드 선교사 로스 목사를 만나 믿음을 키웠고, 1876년 세례를 받아 첫 한국인 개신교 신자가 되었답니다.

☞허균이 최초의 천주교 신자?

'홍길동전'을 쓴 소설가이자 개혁 사상가였던 허균(1569~1618)을 최초의 천주교 신자로 보는 사람도 있어요. 허균은 1614년 명나라를 방문한 뒤 귀국길에 많은 책을 구해왔는데, 이때 만국지도(세계지도)와 천주교 기도문인 12단(端)을 가지고 왔지요. 허균이 천주교 사상에 동감했기 때문에 이런 물건을 가져왔을 거라는 주장이에요.





지호진·어린이 역사 저술가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