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뉴스 속의 한국사] 지방 다스린 고려의 '사심관'… 첫 수장은 신라 경순왕이었죠

bindol 2021. 11. 8. 04:54

[지방자치 제도]

고려의 왕건, 지방 세력 견제 위해 지방자치기구 만들고 책임지게 해
조선시대 유향소·향청으로 이어져

올해 6월 13일 지방선거 실시해요

새해가 밝았어요. 올해는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지방선거가 6월 13일 실시되는데요. 지방선거란 주민들이 자기가 사는 동네 대표를 뽑는 선거로, 시장·도지사·구청장·시의원·도의원·구의원·교육감 등을 선출하는 지방자치 제도 행사랍니다.

지방자치 제도는 주민이 뽑은 대표들이 중앙정부의 큰 간섭 없이 그 지역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고 처리하는 정치 제도를 말해요. 그렇다면 왕이 권력 중심에 서서 나라를 다스렸던 과거에는 지방자치 제도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유향소를 폐지하라!"

1467년 조선 7대 임금 세조는 함경도 호족(지방 토착 세력) 이시애가 반란을 일으키자 중앙군을 보내 진압했어요. 그러고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지요. "이시애가 난을 일으킨 중심에는 유향소(留鄕所)가 있다. 지금부터 전국 유향소를 폐지하겠노라!"

 /그림=정서용

조선 초기 만들어진 유향소는 어떤 지방에서 세력이 있던 사람이나 벼슬자리에서 은퇴한 사람, 또는 그 지역에 거주하면서 벼슬아치를 지냈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었어요. 그 지방 풍속을 바로잡거나 지방행정 실무를 담당하던 하급 관리인 향리(鄕吏)의 부정부패를 단속하는 일 따위를 맡았지요.

그런데 세조 때 수령이 유향소 관리 감독을 강화하도록 하자, 이시애가 이에 불만을 품고 백성들의 지역감정을 부추겨 반란을 일으킨 거예요.

"지방 실정을 잘 아는 유향소가 있어야 수령이 고을을 다스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고을 질서를 바로잡는 유향소를 다시 세워야 합니다!"

유향소가 폐지되자 지방 세력가들은 유향소를 다시 설치하려는 운동을 벌였어요. 그 결과 9대 임금 성종 때인 1488년 유향소가 부활했지요. 유향소는 임진왜란(1592~1598) 이후에는 '향청(鄕廳)'이라 불렀고 사심관(事審官)·유향소와 비슷한 기능을 했답니다.

유향소는 고려시대 초기 태조 왕건이 만든 사심관 제도를 본뜬 것이었어요. 고려를 세운 태조는 지방의 토착 세력가들을 이용하기 위해 지방자치기구인 사심관 제도를 만들었지요. 지방관을 그 지방 출신 인물로 임명해 다스리게 하고, 만약 그 지방에서 반역이 일어나면 사심관이 모두 책임지도록 한 것이었어요.

건국 초기 왕권이 확고하지 못했을 때 지방 세력을 이용해 나라 기반을 다지고 호족을 견제하려고 했던 거예요. 사심관은 토착 세력인 향리를 감독하고 그 지방 풍속을 바로잡는 일을 맡는 등 지방자치에 그 나름대로 역할을 했어요.

고려의 첫 사심관은 신라의 마지막 왕이었던 경순왕이었답니다. 935년(태조 18년) 경순왕이 신하들을 데리고 고려의 도읍지인 개성에 가서 태조에게 항복하자, 왕건은 경순왕을 경주 지역의 사심관으로 삼았어요. 아울러 여러 건국 공신(功臣·나라를 위해 특별한 공을 세운 신하)들을 자기 고장의 사심관으로 임명해 백성과 향리를 다스리도록 했답니다.

◇세종이 실시한 토관 제도

사심관 제도는 점차 체계를 갖추었어요. 996년(성종 15년)에는 사심관 정원을 인구가 500정(丁·군대에 갈 수 있는 남성 수) 이상인 주는 4명, 300정 이상인 주는 3명, 그 이하인 주는 2명으로 정했어요. 아무리 작은 주라도 최소한 2명이 임명된 것이지요. 이는 사심관 1명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고 해요. 당시 전국 주현 수가 약 600개나 됐던 것을 보면 사심관도 최소 1200명이었던 셈이지요. 사실상 중앙 관료 대부분이 사심관에 임명되었던 거랍니다.

앞서 조선 세종 때 사심관 제도와 비슷한 또 다른 지방자치 제도인 '토관 제도(土官制度)'도 있었어요. 세종이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 여진족을 몰아내고 함경도 지방에 4군 6진(군사적 목적으로 만든 행정 구역)을 개척했는데, 이 지역이 워낙 멀다 보니 한양에서 가고 싶어 하는 관리가 없었어요. 그래서 나라에서 함경도 출신 사람을 관리로 임명해 다스리도록 한 것이지요.

원래 조선시대 관리 임명 원칙은 어떤 지방에 인연이 있는 인물을 그 고장 관리로 임명하지 않는 것이었어요. 권력 집중과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서였지요. 이를 '상피제(相避制)'라고 해요. 하지만 당시 함경도 지방에는 상피제를 실시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임시로 지방자치 제도의 일종인 토관 제도를 실시한 것이랍니다.


[대한민국의 지방자치]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1949년 지방자치법이 제정되면서 시작됐어요. 하지만 당시 지방자치단체장은 중앙정부에서 임명했지요.

1991년 시·군·구의원을 뽑는 지방선거가 부활했고, 1995년 시장 등 광역단체장과 광역의회, 기초단체장, 기초의회 의원을 뽑는 선거가 동시에 실시되면서 진정한 의미의 지방자치 시대가 열렸답니다. 그 뒤 1998년 제2회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4년마다 지방선거를 실시해 올해 7번째 지방선거를 맞게 된 거예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저술가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