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조선의 도감(都監)
얼마 전 국회가 '미세먼지대책특별위원회'를 확대 설치하는 내용의 법안을 의결했다는 뉴스가 전해졌어요. 우리 국민이 미세 먼지를 북핵이나 지진보다 더 불안하게 느낀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을 만큼 이 문제가 일상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대책위원회가 어떠한 획기적 방책을 내놓을지 많은 사람이 기대하고 있답니다.
이처럼 정부나 국회, 정당, 기관 등에서 어떤 특정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임시로 만드는 기구를 '대책위원회'라 불러요. 재난안전대책위원회, 테러대책위원회, 선거대책위원회 등 다양한 대책위원회가 우리 사회에 생겨났다 사라지지요. 그런데 과거 고려·조선시대에도 국가의 중요한 일에 대처할 목적으로 여러 가지 특별한 임시 기구를 설치했다고 해요. 과연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요?
◇교정도감, 고려 최고 정치기구가 되다
1209년 4월, 고려 무신정권(1170~1270년까지 무신들이 정권을 장악했던 시기) 중반기. 개성 인근 역참(驛站·교통 통신 기관) 관리들이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최충헌(1149~1219)과 그의 아들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꾸몄어요. 무신정권은 문신(文臣)과 비교해 차별 대우를 받는다고 느낀 무신(武臣)들이 정변을 일으키고 나라를 실질적으로 통치한 시기를 말하는데요. 당시 최충헌이 자기 마음대로 왕을 갈아치우는 등 각종 횡포를 부리자 이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그를 없애려는 계획을 꾸민 것이지요.
▲ /그림=정서용
그러나 이 암살 계획은 한 승려가 최충헌에게 몰래 고해 바치면서 결국 발각됐어요. 최충헌은 역모 관련자들을 찾아내 처벌하기 위해 거란 사신을 맞이하는 장소로 쓰였던 영은관에 임시로 '교정도감(敎定都監)'을 설치했지요. 그러니까 교정도감은 정변 등 비상시국에 대처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설치한 비상대책기구였던 셈이에요. 하지만 최충헌은 사태가 마무리된 뒤에도 교정도감을 폐지하지 않았고, 최충헌과 그 후손들(최우·최항·최의)로 이어지는 '최씨 세습 정권'을 유지하는 최고 정치기구로 군림했답니다. 최씨 정권의 반대 세력을 색출하고 제거하는 데 이용됐을 뿐 아니라 관리의 각종 비위 감찰이나 백성들로부터 세금 걷는 일, 지방 기관에 명령을 하달하는 일까지 이곳에서 처리했지요. 교정도감은 1270년 무신정권이 무너진 뒤에야 비로소 폐지됐어요.
◇고려시대 임시 기구 '도감(都監)'
이처럼 고려에는 교정도감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걸쳐 각종 도감이 수시로 생겨났다가 사라지곤 했어요. 고려 제4대 왕 광종 때는 궁궐을 짓거나 수리하는 역할을 맡았던 '궁궐도감'이 설치됐고, 13대 왕 선종 때는 군사들의 의복을 공급하는 '정포도감'이 설치되기도 했지요.
1365년 31대 공민왕은 억울하게 형벌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조사해 원통한 사정을 풀어주는 '형인추정도감(刑人推正都監)'이라는 임시 관청을 설치했는데요. 이듬해 왕의 신임을 받던 승려 신돈이 이 기관을 '전민변정도감(田民辨整都監)'으로 확대 개편하면서 공민왕의 개혁 정책에 힘을 실어주었지요. 원래 전민변정도감은 약 100년 전인 1269년(원종 10년) 권세 높은 관리들이 농민들의 토지를 빼앗고 그들을 노비로 삼는 횡포를 바로잡기 위해 세워졌는데, 당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사라졌다가 공민왕 때 다시 부활한 것이에요.
이 밖에 부처의 힘으로 몽골 침입을 막기 위한 대장경을 만드는 일을 전담했던 '대장도감', 왜구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해 화약 무기를 만드는 일을 도맡았던 '화통도감' 등이 잘 알려진 고려시대 도감이에요.
◇조선시대 만들어진 여러 도감
조선시대에도 고려의 제도를 본떠 특별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임시로 여러 도감을 설치했어요. 중국에서 오는 사신을 맞이하기 위해 설치했던 영접도감, 왕실의 혼례를 담당하기 위해 설치했던 가례도감, 왕과 왕비의 무덤을 만드는 일을 맡았던 산릉도감, 왕이나 왕비가 죽은 뒤 붙이는 이름인 시호를 짓기 위한 상호도감, 궁중에서 베풀던 잔치를 준비하기 위한 진연도감, 공신들의 업적을 조사하고 표창하는 공신도감 등이 있었지요.
수도 한양의 수비를 맡아보던 군사 조직인 훈련도감도 처음에는 임시 기구였어요. 임진왜란 중 일본군이 사용하던 조총의 위력을 목격하고 사회상에 걸맞은 군사 제도를 갖추기 위해 포수로만 구성된 특수부대를 만든 것이지요. 이후 사실상 상설 기구로 변하였고 1746년(영조 22년) '속대전'(경국대전의 속전)에 정식 수도 방위 군사 기구로 규정됐답니다.
[원나라 간섭기 각종 도감]
고려가 원나라 간섭을 받던 시절 백성의 삶을 힘들게 했던 도감도 있었어요. 1274년(원종 15년) 설치한 결혼도감은 원나라에서 요구하는 고려 여성을 뽑는 임시 관청이었고, 1277년(충렬왕 3년) 설치한 농무도감은 원나라의 일본 정벌에 필요한 군량미나 농기구 등을 강제로 거두는 기관이었지요. 1328년(충숙왕 15년) 설치한 반전도감은 왕이 원나라에 갈 때 비용을 마련하는 기구였는데 백성에게 금품을 거둬들여 원성을 샀어요.
지호진· 린이 역사 저술가
'뉴스 속의 한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뉴스 속의 한국사] 궁녀와 의녀, 유교사회 조선의 '전문직 여성'이었죠 (0) | 2021.11.08 |
---|---|
[뉴스 속의 한국사] "사도세자 억울함 풀어달라"… 조선시대 첫 연대 청원이죠 (0) | 2021.11.08 |
[뉴스 속의 한국사] 왕을 낳은 후궁 7명 기린 사당… 영조가 生母 위해 처음 세워 (0) | 2021.11.08 |
[뉴스 속의 한국사] 소금 장수 출신 미천왕, 낙랑군 몰아내고 영토 넓혔죠 (0) | 2021.11.08 |
[뉴스 속의 한국사] 왕의 적자… 치열한 권력다툼에 목숨 잃기도 했죠 (0) | 2021.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