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세상을 말하다]平昌 평창
“중국 갔던 서기는 지금 어디 있나(中原書記今何方)/옛 고을 쓸쓸한 오랜 산모퉁이로세(古縣蕭條舊山角)/땅은 좁아 문전에 수레가 엇갈리고(地到門前容兩車)/하늘도 낮아 산봉우리 위로 겨우 석 자 떨어졌네(天低嶺上僅三尺)/가을이 깊어가니 벼 이삭은 모래밭에 널렸고(秋深禾穗散沙田)/오랜 세월 저 소나무 바위 벽에 푸르러(歲久松根緣石壁)/가는 길 험하기는 촉나라 가는 길보다 더 어려워라(行路難於蜀道難)/집에 돌아가는 즐거움이 촉나라 금관성보다 낫구나(還家樂勝錦城樂)”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1342∼1398년)이 지은 ‘평창군(平昌郡)’이란 제목의 한시다. 이처럼 평창은 ‘조선의 촉(蜀)’으로 불리던 산간벽지였다.
조선 국왕들의 선정을 모은 연대기 『국조보감(國朝寶鑑)』의 명종 16년(1561년)조에 평창군수 양사언(楊士彦)의 상소문이 나온다.
“본 군은 옛날 예맥(濊貊·한민족의 조상)의 작은 현이었습니다. 처음에 목조비(穆祖妃·태조 이성계의 5대조)의 고향이어서 군으로 승격시키고 세금을 덜어줬습니다. 당시에도 논밭의 세금이 800결, 주민이 500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밀린 세금이 700석에 주민은 40호, 잔혹한 속리가 여덟 아홉 명이니 고을을 없애고 다른 고을에 부속시키는 것이 상책입니다.”
이 정도로 쇠락했던 평창을 둘러본 선조 때의 문신 이춘원(李春元)은 ‘평창’이란 시를 남겼다.
“소라 소리에 끌려 깊은 산에 들어가(鳴螺引我入深山)/온종일 단풍과 바위 사이에 노니네(盡日丹楓白石間)/멀리 산골짜기 보이는 초가집 아래 있노라니(遙望隔溪茅屋下)/한 무리 인물들도 백년 내내 한가롭네(一群人物百年閑).”
두메산골 평창이 삼수 끝에 2018년 겨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수적천석(水滴穿石)의 노력’ 덕이라는 말이 나온다.
전한(前漢)의 미문가(美文家) 매승(枚乘)은 “태산의 낙숫물이 바위를 뚫고, 가느다란 두레박 줄이 우물가의 난간을 끊는다(泰山之霤穿石, 單極之綆斷幹). 물이 바위 뚫는 송곳이 아니고, 밧줄이 나무 켜는 톱이 아니지만, 조금씩 거듭하면 그렇게 된다(水非石之鑽, 索非木之鋸, 漸靡使之然也)”고 말했다.
항심(恒心)에 꾸준한 노력이 보태지면 꿈은 이루어진다. 평창의 성공은 그것을 웅변하는 본보기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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