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가 있는 아침

(101) 벽상(壁上)에 걸린 칼이

bindol 2022. 1. 31. 16:51

(101) 벽상(壁上)에 걸린 칼이

중앙일보

입력 2021.12.09 00:16

유자효 시인

벽상(壁上)에 걸린 칼이
김진태 (생몰연대 미상)

벽상에 걸린 칼이 보믜가 낫다 말가
공(功)없이 늙어가니 속절없이 만지노라
어즈버 병자(丙子)국치(國恥)를 씻어볼까 하노라

- 청구가요(靑邱歌謠)

평화의 전제 조건은 국방력

벽 위에 걸어둔 칼에 녹(보믜)이 슬었단 말인가. 아무런 공을 쌓은 바 없이 늙어만가니 칼만 속절없이 만진다. 아, 이 칼로 병자호란의 수치를 씻어보고 싶구나.

1636년 일어난 병자호란은 인조가 남한산성에 45일간 청나라 군대에 포위돼 항전하다가 결국 삼전도(三田渡)에 설치된 수항단(受降檀)에서 청태종(淸太宗)에게 항복하면서 끝났다. 전후 소현세자를 비롯한 수십만 명이 청에 끌려가 인질과 노예가 되었으니 중기 조선을 뒤흔든 대참변이었다.

김진태(金振泰)의 호는 군헌(君獻). 영조 때 가인(歌人)이다. 그의 시조 26수가 전하는데 세상일을 개탄하고 타일러 훈계하며, 자연을 즐기고 맑은 마음으로 강호에서 살고 싶은 뜻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인 영향으로 전란이 잦았다. 6·25 이후 70년 가까운 평화를 누리고 있음은 한반도 사상 드문 예에 속한다. 그동안 경제 건설에 매진할 수 있었다. 국방력의 뒷받침 없는 주전론(主戰論)이나 섣부른 평화론은 금물임을 역사는 가르쳐준다.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북한과의 종전협정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큰 화를 부르는 빌미가 되진 않을까. 때는 정권 말기. 걱정 속에 한해가 저물어간다.

유자효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