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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실리콘밸리 정신’ 잊어가는 빅테크 기업들

bindol 2022. 4. 19. 05:56

[동서남북] ‘실리콘밸리 정신’ 잊어가는 빅테크 기업들

한국을 시작으로 유럽도 구글·넷플릭스 등 규제 움직임
‘꼼수’ ‘무임승차’ 논란에 혁신 이끈 초심 보이지 않아

입력 2022.04.19 03:00
 
아마존,애플,페이스북,구글 로고./로이터 뉴스1

미국 실리콘밸리의 대표적 빅테크 플랫폼 기업으로 꼽히는 구글·애플·넷플릭스 등이 요즘 우리나라를 부쩍 주시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 자신들을 향해 진행 중인 일련의 규제 움직임 때문이다.

오는 2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과방위) 법안소위는 넷플릭스처럼 막대한 양의 데이터 트래픽을 유발하면서도 콘텐츠 수익만 챙겨가는 사업자들에게 의무적으로 통신업체와 망 이용 대가 계약을 체결하는 내용의 ‘망 무임승차 방지법’을 상정해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카카오 등과 같은 국내 업체들이 망 이용 대가를 부담해온 것과 달리, 그동안 넷플릭스는 이를 내지 않아왔다. 앞서 국내 통신업체가 넷플릭스를 대상으로 ‘망 이용료를 내라’는 소송을 세계 최초로 제기해놓은 상태여서 그 최종 결론에도 관심이 쏠린다. 넷플릭스가 1심에서 패소했지만 항소해 현재 서울고법에 넘어가 있다.

스마트폰 앱 장터를 운영하는 구글·애플의 경우, 앱을 올린 개발업체들에게 소비자가 해당 앱에서 게임이나 음악, 웹툰 등의 유료 아이템을 구매할 때 최대 30% 수수료를 떼는 특정 결제 시스템(인앱 결제)만 쓰도록 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우리나라는 지난달부터 수수료 30%를 떼는 특정 결제 방식을 구글이 강요할 수 없도록 한 ‘인앱결제 방지법’을 세계 최초로 시행했다. 하지만 구글은 기존 수수료 30% 결제 외에 새롭게 수수료 26% 결제 방식을 추가하는 식으로 바로 우회로를 찾았다. 이 때문에 꼼수 논란이 다시 불거졌고, 허를 찔린 소관 부처(방송통신위원회)는 이달 초 “이 역시 특정 결제 방식 강제”라는 유권해석과 함께 시정을 요구했다. 업계에선 결국 구글이 이 문제를 법정 다툼으로 몰고 갈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빅테크 기업들을 둘러싼 규제 움직임은 유럽에서도 속도를 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1년여간의 논의를 거쳐 주요 빅테크 기업들의 시장 독점을 막는 데 초점을 맞춘 디지털시장법에 최근 합의했다. 구글, 메타, 아마존 등과 같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대표적 빅테크 기업들이 대상이다. 이르면 올해 말 시행될 예정으로, 이 법이 시행되면 빅테크 기업들은 자사의 특정 서비스를 이용자에게 요구할 수 없고, 이를 경쟁사 서비스보다 우대할 수 없게 된다. 심지어 미국 규제 당국도 영향력이 너무 커버린 자국 빅테크 기업들을 견제하기 위해 유럽의 디지털시장법 도입 등을 내심 싫어하지 않는다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망 이용 대가 문제도 최근 도이치텔레콤과 보다폰, 브리티시텔레콤 등 유럽의 대표 통신업체 CEO들이 빅테크 기업들에 망 비용 분담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내기도 했다.

 

이 같은 일련의 흐름에 대해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들은 “시장에 대한 지나친 개입”이라고 반발한다. 하지만 규제의 단초를 빅테크 기업들 스스로 제공한 측면은 분명히 있다.

혁신의 대명사로 통하는 실리콘밸리를 초기에 지배한 정신은 자유와 공유, 인류의 번영이었다. 혁신을 통해 새로운 IT(정보기술) 생태계를 만들고, 높은 진입 장벽을 만들기보다는 그 안에 다른 창업가들도 들어오게 해 노력한 만큼 함께 성장해나가는 이른바 열린 기반이었다. 그 결과 혁신과 도전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들이 무한 성장과 수익 내기에만 집착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롭 라이히 등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3명은 지난해 실리콘밸리를 다룬 책 ‘시스템 에러’에서 “이제 시민과 정치인 모두 빅테크 기업의 제한없는 힘과 시장 지배력을 우려한다”고 했다. ‘무임승차’ ‘꼼수’ 논란까지 불거진 빅테크 기업들에게 실리콘밸리의 초기 정신을 찾기 어렵게 된 지금의 모습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