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집값 뺀 ‘엉터리’ 물가 통계
전 세계가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신음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통계상으로’ 확실히 선방하고 있다. 3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4.1%다. 미국(8.5%)의 절반도 안 되고, 독일(7.3%)·영국(7%)보다도 훨씬 낮다. 앞서 2월 국내 물가 상승 폭은 3.7%였는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7.7%)의 한참 아래였다.
이쯤 되면 청와대발로 ‘K물가’란 용어가 등장할 법하다. 그러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고 있다. 체감 물가가 살인적이라 사방에서 비명이 들린다는 걸 모를 리 없다. 결정적으로 물가 산정 방식에 큰 구멍이 있는지라 섣불리 자랑하다가는 국제적 망신을 사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소비자 물가 통계는 자가(自家) 주거비를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 집값 변동 폭은 물론이고 집을 소유하면서 발생하는 대출 이자, 재산세, 관리비 등의 비용도 일절 안 들어간다. 이른바 ‘영끌’의 고통이 배제돼 있다.
이렇다 보니 아파트 값이 폭발적으로 오르던 2019년, 2020년 연간 물가 상승률이 각각 0.4%, 0.5%로 초저물가였다. 반면 부동산 시장이 안정된 2012년과 2013년에 2.2%, 1.3%로 상대적인 고물가였다. 이쯤 되면 코미디다. 경제학 교수한테 물어봤더니 “소비자 물가는 정부 발표치에 무조건 2%포인트는 더하기하라”고 했다. 3월에 4.1%였으니 자가주거비를 반영하면 적어도 6%는 된다는 얘기다.
물론 정부가 오래전부터 자가주거비를 물가에서 뺀 나름의 이유는 있다. 자가는 소비의 결과가 아니라 투자 자산이라는 견해를 따른다. 하지만 이건 핑계일 뿐 실제로는 집값을 물가에 반영하는 게 기술적으로 어려워서 손을 놓고 있다는 비판도 많다. 통계청은 전·월세는 전체의 9.83% 비율로 물가에 반영한다. 하지만 집세가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이것도 충분하진 않다.
선진국들은 자가주거비와 주택임차료를 합쳐 주거비 항목으로 반영한다. 미국은 이런 주거비 항목이 물가 산정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2%에 달한다. 영국(26%), 독일(21%)도 20%를 넘는다. 그래서 이런 나라들에선 5~8%대 고물가가 나타나고 우리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것처럼 보인다.
집값이 물가에서 빠진 게 단순한 착시에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다. 정책 오판을 야기할 위험이 있다는 게 무섭다. 집값 급등기에 물가가 낮으면 한국은행 기준금리를 계속 낮게 유지하게 되고, 결국 부동산 버블을 키우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급격히 오른 집값이 물가에 반영되지 않으면 임금 인상이 필요보다 낮게 이뤄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소비를 축소시켜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하게 된다. 우리나라 소비자 물가 통계는 ‘앙꼬 없는 찐빵’이다. 집값은 어떻게든 물가에 포함시키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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