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별곡] [192] ‘내빼기’에 몰리는 민심
두 가지 대립적인 개념을 한데 엮는 단어 구성은 중국의 언어 전통에서 퍽 돋보인다. 음양(陰陽), 강약(强弱), 노소(老少) 등이 사례다. 그런 맥락에서 잘나가는 학문이나 학설을 현학(顯學), 그 반대를 은학(隱學)으로 적을 때가 있다. ‘두드러짐[顯]’과 ‘가려짐[隱]’의 뚜렷한 콘트라스트다.
법가(法家)의 토대를 이룬 전국시대 한비자(韓非子)는 당시의 ‘현학’으로 두 학설을 꼽았다. 유가(儒家)와 묵가(墨家)다. 전자는 한(漢)에 이르러 관학(官學)의 위상을 차지한 뒤 줄곧 중국인의 삶을 지배한 대표적 학문이다.
그에 비해 다른 이에게도 사랑을 실천하라는 겸애(兼愛)의 가르침을 지닌 묵가 학설은 잠시 유행을 탔다가 가려진 학설인 ‘은학’, 다시 관심을 전혀 받지 못하는 ‘절학(絶學)’으로까지 내동댕이쳐졌다. 중국 문명사의 굵은 미스터리다.
‘현학’ 개념은 영역별로 자주 등장했다. 유명 소설 ‘홍루몽(紅樓夢)’ 연구가 바람을 타면 ‘홍학(紅學)’이 그 자리를 차지했고, 서역으로 향하던 길목의 둔황(燉煌) 동굴 문서가 인기를 얻으면 그에 관한 학문이 당대 ‘현학’의 타이틀을 거머쥐는 식이었다.
요즘 중국 인터넷을 달구는 최고의 인기 학설은 ‘윤학(潤學)’이다. 언뜻 보면 ‘삶을 윤택하게 하는[潤] 학설[學]’로 보이지만 실제 뜻은 전혀 다르다. 앞의 ‘윤’은 로마자로 적는 중국 발음 표기가 run이다. 중국어 발음은 ‘룬’이지만, 이때는 그냥 영어 run으로 읽는다.
물론 그 뜻은 ‘뛰다’ ‘내빼다’다. 현재 중국의 ‘현학’으로 떠오른 이 ‘윤학’은 결국 중국으로부터 내빼는 방법에 관한 여러 궁리와 모색을 가리킨다. 삶의 터전을 아예 외국으로 옮기는 이민(移民)의 트렌드다. 개혁·개방의 퇴조, 강해지는 정부 통제와 감시에 대응하려는 민간의 심리다. 요즘 중국인 삶이 꽤 만만찮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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