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소주(蘇州)는 평원의 수향(水鄕)이다. 끝없이 넓게 펼쳐진 평원 사이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물길에 흐르는 풍경은 좋지만, 기복(起伏)과 곡절(曲折)이 많지 않아 평범하기 때문에 신기한 맛이 떨어진다.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소주인들은 인공으로 연못을 만들고, 산을 쌓은 정원을 곳곳에 남겼다. 일본의 정원은 소주에서 따왔다고 해도 좋다. 기복과 곡절이 나타나자, 여러 가지 아름다운 풍경이 나타났다. 소주의 정원은 원림(園林)이라고 부르는 대표적인 인문문화의 상징이다. 그러나 원림만으로는 아무래도 평면적이다. 사람들은 단순하고 얄팍한 것을 싫어한다. 보탑(寶塔)이 생기면서 평면적인 풍경이 풍성하게 변했다. 보탑은 수향 소주의 풍경을 입체화했다.
어떤 곳의 풍경이 아름다운가의 여부는 공간의 윤곽선이 매우 중요한 관건이다. 항주(杭州)와 계림(桂林)은 유산유수(有山有水)로 강유(剛柔)가 잘 어울리는 자연경관에 풍부한 인문고적까지 더해 명승지를 이뤘다. 서안(西安)과 북경(北京)은 웅장한 궁전과 우뚝 솟은 성곽 덕분에 유서 깊은 고도로서의 면모를 자랑한다. 소주는 원림이 매우 수려하기 때문에 한가롭게 거닐며 소요유(逍遙遊)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왠지 작다는 느낌이 강하다. 보탑이 생기면서 고도 소주의 기세도 평범하지 않게 변했다.
높은 곳에서 소주를 바라보면, 공중에서 조감도를 보는 느낌이 든다. 운암사(雲岩寺) 보탑은 고풍스러운 자태로 푸른 창공을 향해 솟아있다. 북사(北寺)의 보탑은 천군만마를 지휘하는 장수의 모습이다. 서광탑(瑞光塔)은 부드러운 미모의 여인이 수줍은 표정으로 눈길을 보내는 것 같다. 쌍탑(雙塔)은 구름을 뚫고 구고(九皐)로 비상하는 한 쌍의 백학처럼 고고하다. 방탑종루(方塔鐘樓)는 깎아지른 절벽과 같아서 웅장한 성벽을 보는 것 같다.
여러 보탑들이 각자 우뚝 서서 서로 호응하니 숱한 별들이 만월(滿月)을 둘러싸고 있는 형상이다. 이러한 보탑들이 고도의 중심에서 웅장함을 자랑하는 삼청대전(三淸大殿)을 향해 무엇인가 속이 깊은 이야기를 던지고 있다. 자칫 평범할 수밖에 없을 뻔했던 소주의 자연풍경은 사람의 생각과 손길이 가미돼 고도로서의 멋진 공간과 윤곽선을 그려냈다. 그러나 도시 전체의 경관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서 무엇인가 서운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동, 북, 남방에는 모두 나름대로 훌륭한 보탑이 있지만, 서쪽에는 이렇다 할만한 보탑이 보이지 않는다.
더 먼 곳으로 눈길을 보내면, 서남쪽에 야트막한 상방산(上方山)의 실루엣이 보인다. 거기에 능가사탑(楞伽寺塔)과 영암사탑(靈岩寺塔)이 있지만, 중심에서 너무 멀어서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이러한 부조화 탓으로 소주의 공간윤곽선도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서운한 느낌을 누를 수 있는 것은 역시 소주의 역사적 풍모와 풍부한 문화자산이다. 사람이 얼마나 지독할 수 있는지 그 극한을 보여준 오자서(伍子胥)가 쌓은 합려대성(闔閭大城)은 온전히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8좌의 수륙성문은 2500여년의 역사를 담고 여전히 위용을 자랑한다. 성지는 춘추시대의 옛 터전에 그대로 남아 있다. 역사학자 고힐강(顧頡剛)은 소주를 ‘중국 제1의 고성’이라고 평가했다. 고대에 조성한 성과 물길에 그대로 남아 있다. 물길과 육로가 병행하고, 두 길을 따라 거리가 바둑판처럼 형성됐다. 성내를 흐르는 물길은 35㎞나 되며, 거기에 걸쳐진 다리는 170여좌나 된다. 작은 골목은 깊고 그윽해 누구를 잡고 물어도 오랜 옛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인가는 하천을 베고 누워있다. 고성에서는 도시 전체에서 느낀 서운함을 떨칠 수 있다. 소주는 오랫동안 풍부한 물산, 웅장하고 아름다운 풍물, 무수한 인재를 자랑했다. 방대한 지방사지에는 400여곳의 문물고적이 기록돼 있다. 평범한 자연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역시 인문문화이다.
출처 : 천지일보(http://www.newscj.com)
'고전 속 정치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전 속 정치이야기] 난정집서(蘭亭集序) (0) | 2022.06.10 |
---|---|
[고전 속 정치이야기] 상호주의(相互主義) (0) | 2022.06.03 |
[고전 속 정치이야기] 문화통치(文化統治) (0) | 2022.05.19 |
[고전 속 정치이야기] 망국회한(亡國懷恨) (0) | 2022.05.13 |
[고전 속 정치이야기] 안영회고(晏嬰懷古) (0) | 2022.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