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모음

돌고 돌아 '이재명 당(黨)'인가

bindol 2022. 6. 7. 04:24

돌고 돌아 '이재명 당(黨)'인가

중앙일보

입력 2022.06.07 00:36

최민우 정치에디터

 6·1 지방선거에서 이재명 의원이 인천 계양을에서 이기고, 민주당은 참패하자 '이재명 일명 구하기' '나 혼자 산다' 등 패러디가 속출했다. 비명계는 기다렸다는 듯 맹공을 퍼부었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선거 당일 "자생당사(自生黨死·자기는 살고 당은 죽는다)"라고 직격했고, 당권 도전이 유력한 4선의 홍영표 의원은 "사욕과 선동으로 사당화시킨 정치의 참담한 패배"라고 했다. 당 전략공천위원장이었던 이원욱 의원은 "필요하다면 대표 수박(내부 총질하는 이를 가리키는 은어)이 되겠다"고 했으며,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이송역(이재명-송영길)에서 출발해서, 윤박역(윤호중-박지현)에 비상 정차했다가, 김포공항에서 끝난 선거"라고 일갈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의원이 현충일인 6일 오전 인천시 계양구 황어장터 3·1만세운동기념탑을 찾아 참배한 뒤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처럼 '이재명 책임론'으로 들끓지만, 본인은 짐짓 모른 척하고 있다. 일찍이 형수 욕설, 김부선 리스크, 대장동 의혹, 법인카드 유용 등 숱한 구설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그 아니던가. 이 정도 역공이야 보궐 출마를 결정할 때부터 예상했던 터. 이미 당내에선 친명·비명 가리지 않고 그의 8월 전당대회 출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재명의 계산서가 나왔다"는 관측이다.

[트위터 캡처]

①맞수가 없다=현재 민주당 의원은 169명이다. 머릿수로는 '친문' 우위다. 2년 전 총선에서 공천권을 휘두른 덕이다. 하지만 대선을 거치면서 '친명'으로 갈아탄 이가 적지 않다. 특히 '처럼회' 등 초선 강경파는 이재명 호위무사를 자처하고 있다. 수적 열세를 조직력으로 커버하겠다는 심산이다. 무엇보다 '이재명 대항마'가 눈에 띄지 않는다. 친문 대표주자로 홍영표, 전해철(3선) 의원이 거론되나 대중적 인지도는 떨어진다. 이낙연 전 대표는 미국으로 떠난다. 계파색이 옅은 김부겸 전 총리를 옹립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오지만, 구심력을 갖출지는 미지수다.

 

②갑옷의 두께=친문 김종민 의원은 "지역구까지 바꾸면서 대선 떨어지고 한 달 만에 또 출마하는 건 헌정 사상 처음"이라고 꼬집었다. 그럼 전과 4범 대선후보는 과거에 있었나. 일반적 상식을 뛰어넘는 게 '정치인 이재명'의 경쟁력이라고 떠들지 않았나. 대선 지고 한동안 외유 나갔다가 정계 복귀하는 수순도 이젠 식상하다. 게다가 이 의원은 지금 당장 조사를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처지다. 대장동 의혹은 서울중앙지검, 변호사비 대납은 수원지검, 성남FC 불법 후원금은 분당경찰서, 김혜경씨 법인카드 유용은 경기남부청이 수사하고 있다. 일개 의원의 불체포 특권이라는 얇은 방패로 이를 막아내기엔 버겁다. 당과 한 몸이 돼 "검찰 독재로부터 야당 대표를 지켜 달라"고 목놓아 외쳐야 한다. 한가롭게 체면을 따질 때가 아니다.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민주당 중앙당사 입구에 이재명 의원 지지자가 보내온 화환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③'개딸'의 위력=민주당은 꼬리(당원)가 몸통(의원 및 지도부)을 흔드는 수준을 넘어 '원사부일체'(員師父一體) 경지로 치닫고 있다. 과거 직접 민주주의라는 명분을 내세워 '대깨문'의 양념질을 지지하던 친문은 최근엔 이 의원 지지층인 '개딸'(개혁의 딸)의 문자폭탄에 몸살을 앓고 있다. 이참에 이 의원 측은 '개딸'의 위세에 더 편승하겠다는 전략이다. 대선 전후로 '개딸'이 늘어났기에 권리당원 자격을 완화(당원가입 후 6개월→3개월)하면서 반영 비율도 높이려 하고 있다. 8월 전당대회 승리를 위한 포석이다.

국민의힘은 2017년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당했음에도 '친박' 색채를 빼는 데 4년이 걸렸다. 변곡점은 2020년 총선 참패였다. 4·15 부정선거론을 계기로 태극기부대와 절연할 수 있었다. 바닥이 아닌 지하까지 떨어지고서야 변화의 싹을 틔울 수 있었던 거다. 그러기에 민주당은 아직 배가 부르다. 20년 집권론은 아른거리고, 169석의 완력은 호기롭다. 하루 만에 태세 전환한 고민정 의원처럼, 곧 돛을 올릴 '이재명호'에 승선하려는 이들로 북새통을 이룰지 모른다. 모두가 혀를 차도 '이번만은 달라'라는 자기최면이 또 민주당을 휘감을 것이다.

최민우 정치에디터